고려의 문화1

I. 유학

불교 숭상 국가인 고려에서도 유학은 치국의 근본이라면서 정치 이념을 주도적으로 담당했어.
유학 중에서도 초반에는 경전의 자구해석을 중심으로 하는 훈고학이 발달하다가, 후기에 가서는 인간의 심성과 우주의 원리를 탐구하는 성리학이 주도권을 잡지.

1. 고려 초기

태조는 서경에 학교를 세우고, 6두품 출신의 유학자들을 등용하여 그들의 도움을 받아 정치 방향을 정했단다.
광종 때는 유교를 과목으로 한 시험인 과거제가 실시됐고,
성종<★​>​은 유학을 장려하기 위해 중앙에는 국자감<★​>, 지방에는 의학·경학박사(교수)를 파견<★​★​>​하고 향교를 세웠지.
관학(공교육)을 진흥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야.
최고 교육 기관인 국자감에는 유학부와 율학·서학·​산학 등의 기술학부가 있었단다.<★​★​>
참고로 국자감의 변화과정을 살펴보자면, 명칭이 충렬왕 때 국학으로, 충선왕 때는 성균관으로 바뀌었어.<★​>​
그리고 고려 말 공민왕 때에는 유학부만 남기고, 기술학부는 없앴다는 것을 알아둬.

2. 문벌귀족

문벌귀족이 정권을 잡을 당시 유명한 학자로는 최충과 김부식이 있지.
최충<★​>​은 해동공자라고 불리는 매우 학식이 높은 학자였는데, 그는 훈고학을 철학적으로 해석을 했고(김부식은 현실적으로 해석), 문헌공도라는 학당을 세워.​(문종)<★​>​
9개의 유학과 역사의 전문과정을 나누어서 가르쳤다고 해서 9재학당이라고도 불러.<★​★​★​>​
지금으로 따지면 9개의 단과학원이 성행한 거지.
최충이 학당을 세워서 그곳에서 많은 수험생들이 과거에 합격했으며 많은 학자들을 융성하여 인재들이 그를 따르자, 고관 출신들이 너도 나도 학당을 세우는 거야.
그러니 귀족 자제들은 관학보다는 사학 쪽을 찾게 되고, 결국에는 유명한 사학당 12개가 생겨​(문종).
그것을 사학 12도<★​★​>라고 해.

국학이란 제도가 중국의 것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라서 우리 정서에 맞는 사학한테는 상대가 되지 않았고 결국 국학을 폐지하자는 주장까지 나오는데...
하지만 국가는 이에 굴하지 않고, 우리 고려 것에 맞는 교육을 만들자며 공교육을 진흥시키자는 노력을 해.
숙종 때는 서적포<★​>라는 출판사를 설치해서 서적을 간행했어.
예종 때는 국자감을 재정비(7종의 전문강좌인 ​7재 개설)하였고,<★​★​★​★​★​★​> 청연각<★​★​>​과 보문각이라는 유학 연구기관을 설치하였으며, 장학금을 팍팍 주는 장학재단 양현고를 만들었어.<★​★​★​★​>​
인종 때 가서는 7재 중에 무과 과목을 폐지하여 경사 6학으로 정비하였고, 향교를 정비하였으며, 경연과 서연과 같은 경학에 대한 강론을 열었단다.
유학의 성격을 보자면 문벌귀족 시기에는 초기의 진취적 학풍은 가라앉고 보수적인 경향을 띠게 됐어.

3. 무신집권기

이때는 유학이 위축되니 별로 볼 것이 없음.

4. 고려후기 (권문세족, 신진사대부)

여전히 관학을 진흥하고자 노력해.
충렬왕은 문묘(공자를 받드는 묘우)를 건립했고, 섬학전(국학 장학재단. 양현고에 귀속됨), 경사교수도감(경학과 사학 진흥업무)을 설치했어.

그리고 성리학의 등장!
그동안 고려에는 훈고학이 유행이었지만, 안향이라는 학자에 의해 원나라로부터 성리학이 소개돼.
(훈고학이니 성리학이니 모두 유학의 종류임)
원간섭기를 거쳐 혼란상황이 지속되자 새로운 이념이 필요해진거야.
이때의 성리학은 조선 중기와 달리 꽤나 현실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지.
성리학에 매력을 느낀 충선왕이 원나라에 가서 성리학 연구기관인 만권당을 설치<★​★​★​★​>​하고, 조맹부(원나라 사람)라는 성리학자를 교수로 모셔서 이제현<★​>​, 백이정, 박충좌 등이 제대로 배워서 고려로 돌아와.
그리고 이제현은 그의 제자 이색과 이곡에게 가르침을 내리고,
이색의 제자로는 그 유명한 신진사대부 정도전과 정몽주가 있었단다.

● 유학 : 정치이념. 초반에는 훈고학. 후기에는 성리학
● 고려초기
태조 : 서경에 학교. 6두품 출신 유학자 등용
광종 : 과거제 실시(유교 과목)
성종 : 중앙-국자감(유학부(7품 이상 자제. 국자학,태학,사문학),기술학부(8품 이하 자제)). 지방-의학·경학박사 파견.향교 <- 관학 진흥 의지
국자감(성종)→국학(충렬왕)→성균관(충선왕)→ 공민왕 때 기술학부는 폐지
● 문벌귀족 : 보수적·귀족적 성향. 시문을 중시.
유학자 : 최충(문헌공도=9재 학당. 9경과 3사 중심 교육. 사학12도에 영향. 철학적 해석). 김부식(현실적 해석)
숙종 : 서적포
예종 : 국자감 재정비. 청연각. 보문각. 양현고. 7재
인종 : 7재 중 무과 과목 폐지하여 경사 6학으로 정비. 향교 정비. 경학 강론
● 무신집권기 : 유학 위축.
● 고려후기 :
충렬왕 : 문묘. 섬학전. 경사교수도감.
충선왕 : 만권당 설치(조맹부 초빙)
● 성리학(원나라) : 안향 소개→백이정→박충좌,이제현→이곡,이색→정도전(불씨잡변),정몽주. 현실적인 성격.

II.역사

고려 때는 유학이 발달하면서 그에 힘입어 역사서가 많이 편찬되었단다.

1. 초기

건국 초기부터 고려왕조실록을 편찬하기 시작했는데 망할 놈의 거란족이 침입하는 바람에 불에 타버려서 소실됐어.
그러나 고려는 포기하지 않고 잔해 속에서 태조부터 목종까지의 자료들을 모아서 다시 편찬한 7대실록(현종) 구삼국사가 있었으나, 이것도 임진왜란 때문에 지금은 현존하지 않아ㅡㅜ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편년통재도 소실됨.
남아있는 것이 없음;

2. 문벌귀족

우리나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그 유명한 김부식의 삼국사기!(인종)​<★​★​★​>
도덕적 합리주의가 강한 유교사관과 문벌귀족답게 사대적인 성격이 묻어나는 책이란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인종에게 진헌하면서 진삼국사기표를 함께 올렸다는 것을 기억!​)<★​>​
삼국사기는 삼국시대(+통일신라)에 관한 내용이 나와 있는데, 승리자인 신라 중심으로 서술된 역사서야.
걍 신라 왕이나 신하들을 칭찬한 책이지.
처음에는 고려계승국가라 했다가 문벌귀족 때 신라계승의 성격을 띤다고 했지?
또한 삼국사기는 기전체 서술 방식<★​★​>​을 보여주고 있어.
기전체가 뭐냐면 왕에 대한 본기, 제후에 관한 기록인 세기, 제도나 풍습에 관한 지, 연표, 신하들 이야기가 담겨있는 열전으로 구성되는 체제야.
본기, 열전 이런 단어 보이면 걍 기전체구나 생각하면 돼.
반면 편년체는 걍 연월에 따라서 서술한 방식이란다.
기전체는 인물 중심! 편년체는 시간 중심!

3. 무신집권기

각훈이 쓴 해동고승전(고종)<★​★​★​★​>​과 이규보가 쓴 동명왕편(명종)<★​>​이 있어.
전자는 삼국에서 고려까지 고승(스님)들의 전기를 쓴 것이고, 동명왕편은 고구려 계승 의식을 반영하고 고구려의 전통을 노래(서사시 형태)한 것으로 건국자인 고주몽의 전기를 쓴 것이지.<★​★​★​>​
몽고 침략기에 고구려의 역사를 통해 자주성을 고취시켜려고 한 거야.

4. 고려 후기

자! 원간섭기가 시작됐어. 원나라 놈들이 우리의 정체성을 말살시키려고 해. 그럼 어떻게 해야겠어?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해야지!
그래서 불교사를 중심으로 민간 설화와 전래 기록을 수록하면서 최초로 단군 고조선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룬 일연의 삼국유사(충렬왕. 1281)<★​★​★​★​★​★​★​★​★​★​>​고조선부터 고려까지의 역사서이자 발해사가 우리 역사로 최초로 기록된 이승휴의 제왕운기(충렬왕)<★​★​★​>​가 탄생해.
삼국유사는 충렬왕 때 군위 인각사에서 스님인 일연이 쓴 것으로 자유로운 야사체 형식으로 저술되었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곰과 호랑이의 단군신화가 여기에 나와있지.
우리의 고유 문화와 전통을 중시하였으며, 왕력, 기이, 흥법, 탑상, 의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단다.<★​>
이런 역사서를 통해 민족적 자주의식을 단단히 다졌지.
삼국유사는 불교를 중심으로! 제왕운기는 유교를 중심으로 해서 도교, 불교를 포함하여 서술을 하고 있어.

고려 말의 역사서는 죄다 소멸됐고 이제현의 사략에 실린 사론만이 남아있는데 이는 정통 의식과 대의명분이 녹아있는 성리학적 사관 성격을 띄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

● 호족 : 고려왕조실록. 7대실록(구삼국사. 현종). 편년통재.
● 문벌귀족 : 삼국사기(김부식 저. 인종. 신라중심. 기전체 서술방식(본기,세기,지,연표,열전). 유교사관. 사대적. +진삼국사기표)
● 무신집권기 : 해동고승전(각훈 저. 고종. 고승들의 전기),동명왕편(이규보 저. 명종. 고주몽 전기. 고구려 계승의식)
● 고려후기 : 삼국유사(일연 저. 충렬왕. 자유로운 형식. 불교사 중심. 고조선. 고유문화와 전통 중시. 왕력·기이·흥법·탑상·의해). 제왕운기(이승휴 저.충렬왕. 유교를 중심으로 불교·도교 포함). 사략-사론(고려말. 이제현.성리학적 사관)

III. 불교

1. 고려 초기

태조는 불교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는데 중앙에서는 연등회와 팔관회가 성대히 열렸고, 훈요10조를 지어서 계속 이 행사를 중시하라고 당부하기도 했어.
또한 승록사를 지어서 승려의 행적을 기록했지.​
불교 진흥을 위해 투자를 팍팍! 한 거야.
그리고 저번에 말했듯이 지방에서는 매향활동을 하는 향도가 있었다는 것 다시 한 번 기억해둬.

3대 왕 정종은 승려들을 위한 장학재단인 광학보를 설치하여 불교를 지원했고...

광종은 고려사절요에서 불교에 지나치게 심취했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불교매니아였는데,
그는 귀법사를 창건하고 균여 스님을 주지로 앉혔어.
이에 따라 균여는 화엄사상을 정비하고 보살의 실천행을 폈던 그의 화엄종이 성행한단다.
그래서 광종은 교종은 화엄종, 선종은 법안종을 중심으로 불교계 정리를 시도하지.
또한 균여는 보현십원가를 지어 불교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것을 기억!<★​★​>
그리고 광종은 태조 때부터 시작한 국사·왕사제도를 완성해.
왕사제도가 뭐냐면 스님이 왕의 스승이 되는 것.
승려가 왕의 스승이니 불교가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시대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야.
게다가 승려 과거시험인 승과제도를 실시하여 합격한 자에게는 승계를 주고 승려의 지위를 보장하였어.
그리고 사원에게 토지와 노비를 주고, 면세를 해줬으며 스님들에게 역을 면제시켜주었지.

통일신라 후기에는 선종이 유행했지? 고려에 와서는 교종(교학)의 영향력이 강해져.
초기에 화엄종(교종), 법상종(교종), 선종... 이렇게 3가지 종파가 발전하고 있었어.
종파가 대등하게 발전하니 어떻게 되겠어?
서로 우위를 차지하려고 치고 박고 싸우겠지?
게다가 이런 종파는 정치적 세력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어.
따라서 고려에서는 교종과 선종의 치열한 우위 싸움이 전개돼.

2. 문벌귀족

교종은 뭐야? 경전해석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야.
글도 모르는 평민들은 감히 다가가지도 못하는 종파라고!
매우 귀족적 성격을 띠고 있잖아.
어때? 딱 문벌귀족스럽지? 귀족 정치를 펼치는...
그래서 문벌귀족이 득세하던 때는 교종이 유행해.
근데 교종만 고려 불교를 독차지한 것은 아니야.
교종과 선종을 통합시키려는 노력이 전개돼.
그에 앞장섰던 인물이 의천대사!
당시 교종은 5개의 종파가 있었는데, 의천은 송나라 유학을 마친 후 돌아와서 흥왕사에서 화엄종(교종) 종파를 중심으로 문벌귀족의 지지를 받는 법상종(교종)을 누르는 등 교종 종파를 통합한 후, 문종의 후원을 받아 국청사를 창건하여 교종을 중심으로 선종까지 포용하는 교단 통합 운동을 펼쳐.<★​★​★​>​
그래서 탄생한 것이 교종도 아니요, 선종도 아닌​ 천태종이야.<★​★​★​★​★​>​
천태종에서는 교종과 선종을 통합해서 이론과 실천의 양면을 강조하는 교관겸수<★​★​>​, 안과 밖이 어울러 갖추어져야 한다는 내외겸전​을 주장해.
또한 의천은 불교계의 폐단을 비판했으며, 교장도감을 설치하여 불교 경전을 해석하는 4700여 권의 목판으로 된 신편제종교장총록<★​★​★​>​을 간행했을 정도로 업적이 뛰어났어.
근데 문제는 이 의천이 문종의 아들<★​>​, 즉 왕자란 말이지. 아무래도 왕자니까 힘이 강했겠지?
교종과 선종을 논리로만 통합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힘으로 통합을 시켰어.
교리중심이 아닌 교단중심의 통합! 이러니까 한계가 있지.
의천이 죽고 나자 교단은 다시 분열되고 귀족 중심이 돼;

솔직히 말해서 불교파트는 말이지...
깊게 이해하려고 하면 더 힘들어지는 파트야 ㅡ.ㅡ
그래서 살짝만 이해하고, 꾹 참고 걍 외워.

3. 무신집권기

무신 정권 때는 선종이 유행해.
그동안 문벌귀족의 지원을 받아온 교종이 무신정권으로 인해 찬밥 신세가 되자, 귀법사 등을 비롯하여 교종계열 승려들이 난(1174. 명종 때. 정중부 집권시)​을 일으켰거든.​(무신 정권에 일어난 반란에 추가로 알아두길)
이를 계기로 무신 정권은 선종 집단인 백련사를 후원​<★​>​하면서 선종이 성장하게 되지.
이때는 지눌에 의해 선종과 교종이 통합되는데, 이는 물리적으로 통합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교리로 정상적인 통합이 이루어지는데 성공을 해.
교단이 아닌 교리를 중심으로 통합!
지눌은 수선사(명칭 변경 : 정혜사->수선사->송광사)에서 화엄경 공부에 몰두하여 의미를 분석한 후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가미하는 조계종을 창시해.<★​★​★​★​>​
조계종은 교종과 선종을 함께 공부해야 한다는 정혜쌍수<★​★​★​>​와 진리를 얻어도 구체적인 번뇌는 한번에 없어지지 않으므로 먼저 깨우치고 나서도 계속 수행하여 번뇌를 차례로 제거할 수 있다는 돈오점수<★​★​>​를 주장한단다.
또한 지눌은 당시 부패한 불교를 개혁하려고 동문 10여 인과 함께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산림에 은둔하여 모임을 맺자며' 순천 수선사에서 수선사 결사를 만들었어.<★​★​★​★​>

또한 지눌의 제자인 혜심은 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유교와 불교가 다르지 않다는 유불일치설을 들고 나와.<★​★​>​
이 유불일치설 덕분에 성리학이 등장하는 발판이 마련되지.

교종이 선종에게 앉아서 당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야.
선종을 중심으로 한 수선사 결사가 만들어지자, 여기에 대응을 하여 요세 스님의 백련사 결사(교종 중심)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아둬.<★​★​★​★​★​>​
요세는 백련사(만덕사)에서 천태교관을 사상적 기반으로 하여 참회 수행과 염불을 통한 극락왕생을 주장하며 참회(법화)신앙을 내세웠어.<★​★​★​>​

시험지에서 참회라는 단어 나오면 요세! 라고 외쳐야 돼!(물론 마음속으로ㅋ)
그는 의천의 천태종의 맥락을 이어 교종(천태종)을 중심으로 선종을 병합하여 수행을 한거야.

4. 고려 말기

선종의 일파인 임제종이 등장해.
이들은 화두를 통해 수행하는 참선법인 간화선을 주 내용으로 하지.
화두를 던져주고 받으려면 관계가 필요한데 이에 따라 스승과 제자 관계가 중시됐어.
이런 임제종의 대표적인 스님은 보우인데, 그는 공민왕 시절 원간섭기 때 타락한 불교의 교단을 정비하려고 9산 선문의 통합을 주장하며 불교개혁운동까지 전개했단다.
하지만 실패...

●고려초기-교종과 선종 우위 싸움
태조-연등회. 팔관회. 훈요10조. 승록사. 향도.
광종- 고려사절요에서 비판당함. 귀법사 창건(균여). 보현십원가(균여). 교종은 화엄종, 선종은 법안종. 승과실시. 국사 및 왕사제도 완성. 중국에 승려 파견하여 법안종 배우도록 함. 사원에게 토지와 노비 주고, 면세 및 스님들 역 면제.
●문벌귀족-교종유행
의천대사- 흥왕사에서 화엄종을 중심으로 법상종 누르고 교종 종파 통일. 천태종(국청사 창건,교단 통합운동-교종 중심으로 선종을 포용주장-교관겸수·내외겸전). 불교폐단 비판. 교장도감. 신편제종교장총록. 완전통합 실패(교단중심통합원인)
●무신집권기-선종유행(귀법사의 난. 백련사 후원)
지눌스님-선종 교종 통합(교리중심). 화엄경 의미 분석. 조계종(화엄경 공부.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가미,정혜쌍수,돈오점수). 수선사 결사(선종중심,불교개혁,지식층 중심)
요세스님-백련사 결사(교종중심. 수선사 결사 대응. 민중 중심. 참회)
혜심스님-유불일치설
●고려말기
임제종 등장(선종,간화선,보우스님-9산선문 통합노력 및 불교개혁운동-실패)

IV. 도교

도교는 나라의 안녕을 빌고 재앙을 막고자 하는 취지에서 의례적인 행사를 열며 성행했어.
불교의 영향력이 강해져 왕권을 위협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교로 불교를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었고.
도교의 영향이 묻어나는 것은 우선 팔관회!
팔관회는 사실 불교뿐만이 아닌 도교와 토속신앙의 특색도 갖고 있는 행사야. 도교와 관련 있다는 것을 알아두고.
그리고 초제(성신께 지내는 제사)를 주관하는 도관이라는 사원(복원궁. 예종)이 궁중에 있었어.
도교가 이렇게 궁궐에서도 중요시 되기는 했지만, 불교에 비해 세력이 미미해서 교단은 성립되지는 않아.
그저 민간 신앙정도 포스...

●도교 : 의례적인 행사. 불교견제. 팔관회. 도관(복원궁. 예종).

V. 풍수지리

풍수지리설은 도참사상과 결합하여 발전했어.
도참사상이 뭐냐면 앞으로 일어날 일의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것이야.
풍수지리설과 궁합이 딱 맞지?
집터를 이곳에 자리 잡으면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길지 나쁜 일이 생길지...

풍수지리설은 서경은 지맥의 근본이라며 중시하라고 훈요 10조에도 나와 있을 정도로 크게 유행했단다.
즉 고려 초창기 때부터 서경길지설이 주장되어 이를 바탕으로 3경에 서경이 포함되기도 하고 북진정책을 추진한 거야.
서경길지설 뿐만 아니라, 남경길지설 역시 유행을 하여 11세기 문종 때 한양을 남경으로 승격시키기도 했지.
또한 공민왕과 우왕 때 한양 천도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는 것도 알아둬.

●풍수지리사상 : 도참사살과 결합하여 발전. 훈요10조. 서경길지설→3경에 서경포함,북진정책. 남경길지설→한양 남경으로 승격. 한양 천도 주장 근거(공민왕, 우왕)

- O·X 퀴즈 -
1. 국자감에는 유학부와 기술학부가 있었는데, 공민왕 때 기술학부가 없어졌다.
2. 김부식이 9재 학당을 세워 성행하자, 이를 따라 사학 12도가 생겼다.
3. 예종 때 서적포가 설치되었다.
4. 충선왕은 원나라에 만권당을 설치하였다.
5. 삼국사기는 편년체 서술 방식이다.
6. 충렬왕 때 탄생한 일연의 삼국유사는 불교사를 중심으로 민간 설화와 전래 기록을 수록하였다.
7. 광종은 장학재단인 광학보를 설치했다.
8. 의천은 내외겸전과 돈오점수를 주장했다.
9. 보우는 공민왕 시절 9산 선문의 통합을 주장했다.
10. 풍수지리설은 우왕 때 한양 천도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정답 : OXXOX OXXOO

해설 :
2. 김부식이 아니라 최충.
3. 예종이 아니라 숙종.
5. 기전체 서술방식이다.
7. 정종이 설치했다.
8. 돈오점수는 지눌이 주장했다.





기출문제 풀어봅시다.








백련사하면 요세!

정답 : 2번









승탑이네.
이 종파는 선종이지?

1번. 동학에 관한 설명.
2번. 대종교에 관한 설명.
3번. 유교(성균관)에 관한 설명.
4번. 참선과 수행 선종. 정답!
5번. 시천주는 동학.

정답 4번.









진삼국사표는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왕에게 바치면서 함께 올린 것이지.

1번. 삼국사기는 기전체. 정답!
2번. 용비어천가에 대한 설명.
3번. 발해고에 대한 설명.
4번. 제왕운기에 대한 설명.
5번. 삼국유사에 대한 설명.


정답 1번.















송광사래.
지눌에 관한 설명을 골라보자.

정답 4번.
나머진 송광사랑 관련 없음.










이규보의 문집이래.
동명왕편에 관한 설명을 골라보자.

1번. 유득공의 발해고에 관한 설명.
2번. 삼국유사에 관한 설명.
3번. 조선왕조실록에 관한 설명.
4번. 동명왕편. 정답!
5번. 제왕운기에 관한 설명.

정답 4번.













고려시대 관학진흥책을 골라보자.

1번. 당에 유학생 파견은 통일신라.
2번. 7재는 고려의 관학진흥책이지. 정답.
3번. 사액 서원은 조선.
4번. 경당은 고구려.
5번. 독서삼품과는 통일신라.

정답 2번.












천태종은 의천이지.

1번. 보현십원가는 균여.
2번. 수선사 결사는 지눌.
3번. 유불일치설은 혜심.
4번. 삼국유사는 일연.
5번. 교관겸수 의천. 정답!

정답 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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