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I. 6·25 전 상황

중국은 '공산당 VS 국민당' 대결구도가 형성되어 있었어.
처음에는 국민당이 공산당을 제압하는가 싶었는데 소련과 북한이 중국공산당에게 무기를 무상으로 제공해주는 등 아주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면서 결국 국민당을 발라버리고 중국의 패권은 공산당에게 넘어가.
소련은 중국을 공산화에 성공했으니 다음은 누구 차례겠어?
바로 남한이지.
소련은 남한을 공산화 시키고 일본까지 먹어서 동북아시아 대륙 전체를 장악할 계획이었거든.
이를 부추긴게 바로 김일성이야.

김일성 : 일단 군사 몰고 남조선으로 내려가면 거기에 활동하고 있는 좌익 세력들이 선동해서 도와줄거라우~ 내 순식간에 남조선 우익 쌔리들 다 잡아버리갔어!
소련 : 그럴싸한데? ㅇㅋ 지원해줄게스키.
중국 : 우리도 지원해준다해. 벌써 북한국경에 대군을 배치해놨다해. 빨리 ㄱㄱ

이렇게 든든한 빽을 뒤에 업은 북한이 전쟁준비를 하는 한편, 남한에서는 미군이 철수하고(1949.6) 애치스라인이 선언(1950. 1)되면서 한반도에 전운이 돌아.<★​>

cf)

애치스 라인 : 미국이 설정한 공산주의 침략 극동 방위선. "여기 이상 내려오면 전쟁이다! 진짜 핵 쏜다 불곰국 새끼들아!" 이렇게 단단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는데, 그 경계를 38선에서 일본으로 내림. 즉 남한을 보호구역에서 제외해버린거지ㅡ.ㅡ

● 중국의 공산화. 북한의 전쟁준비. 애치스라인. 미군 철수.

II. 전쟁 진행과정

1950년 6월 25일...<★​>
우리 남한은 편안한 휴일을 즐기고 있었는데 이 북한쌔리들이 선전포고도 없이 갑자기 밀고 내려옴;

임진왜란때랑 비슷하지?
우선 병력에서 2배로 차이가 났어. 우리 남한은 약 10만, 북한은 20만...
자고 있다가 갑자기 깨어나서 2대1로 싸워봐ㅋ
어떻게 이겨 ㅡ.ㅡ

그래서 3일만에 서울이 점령돼.
UN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하여 전쟁을 즉시 중지하고 38선으로 철수하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여 남한에 군사지원을 약속한단다.

하지만 북한놈들은 결의안을 무시하고 쭉쭉쭉 밀고 내려가서 낙동강까지 진격함.
얘네들 중국공산당 지원할 때 실전경험이 있는 군인들이라 조낸 쎄다고.
게다가 일제강점기 때 무장독립투쟁했던 조선의용군까지 흡수한 전투력 최강 군대야 ㄷㄷ
걍 남한군을 쉽게 바르면서 진격했어!
엄청난 피난 행렬이 이어졌고, 경상도로 인구가 몰렸지.

하지만 북한군은 낙동강에서 막혀.(1950.7)
여기마저 무너지면 대한민국 정부 망하는거야.
따라서 학도병(중고등학생들로 이루어진 군인)을 포함한 우리 남한군과 유엔군은 온 힘을 다해 목숨 바치고 전력을 다해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는거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한번 봐봐.
얼마나 치열한 싸움이었는지 알 수 있을거야.

겨우겨우 힘겹게 방어하고 있을때! 바로 그때! 희소식이 들려와.
유엔군이 그림에서처럼 삥~~~돌아서 인천에 상륙한 다음에 북한의 허리를 끊어버린거야.

그 유명한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1950.9.15)으로 서울이 수복돼!(1950.9.28)<★​>​
보급 다 끊긴 북한군은 탈탈 털리기 시작해.
당황해서 이미 사기 다 떨어진 북한군은 퇴각하기에 바빴고 이제는 우리 남한 차례!
38선을 통과해서(1950.10.1) 겁나게 쭉쭉쭉 밀고 올라가ㅋ

결국 압록강과 두만강 경계선까지 털어버렸는데, 바로 그때!!!!
북한 국경선에 배치되어 있던 중국놈들 떼거지가 밀고 내려옴.(1950.10.25)
인해전술 들어봤어? 말 그대로 인간으로 이루어진 바다야.
중국 머릿수 겁나 많잖아? 엄청난 대군이 징이랑 꽹가리 치면서 걍 냅다 달려오는거야ㅡ.ㅡ
우리도 전력을 다해 중국군을 막아보려했으나....
통일을 바로 코 앞에 뒀던 우리 남한은 결국 후퇴를 해...ㅠ 이게 흥남철수작전(1950.12.15)이야.
그리고 북한군과 중국군이 서울까지 쭉쭉 밀고 내려오고 1951년 1월4일에 국군과 UN군이 서울을 포기하고 후퇴를 하지. 이게 1·4후퇴.
하지만 다행히도 얼마 있지 않아 남한군이 평택·오산 부근에서 재반격을 시도하여 서울을 다시 수복하고(1951.3.14), 또 밀고 올라가서 지금의 38선까지 진격을 한단다.
여기서 전선이 굳게 되고 전쟁이 고착상태에 빠져.

그러자 소련은 1951년 6월에 휴전을 제안하지.
이로 인하여 휴전 회담이 시작됐지만 국민들의 엄청난 반발이 있었어.(이승만도 반대 입장)

하지만 이렇게 반대 시위를 하면 뭐해...
당시 우리 나라가 무슨 힘이 있겠어;
결국 유엔군은 1951년 7월에 휴전 제안을 받아들이고 회담을 시작해.
근데 포로송환 문제로 2년을 끌어요...<★​>

미국 : 야! 니네 포로들 중에 남한에 있고 싶은 사람들은 남아있어도 괜찮지? 알아서 하라고 할게~
소련 : 뭔 소리여 ㅡ.ㅡ 장난하지말고, 포로들 다 돌려보내.

이렇게 옥신각신하고 있을때, 이승만이 과감한 결정을 하지.
미국의 동의없이 남한에 있던 반공포로를 다 석방해버려.
어찌됐든 포로문제가 해결되자 1953년 7월 27일에 드디어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체결됐고(체결국 : 미국,중국,북한), 군사 분계선이 확정됐으며, 비무장지대가 설정됐어.<★​★​>
또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1953.10)<★​★​★​>​되면서 지금까지 평화가 지속된단다.

● 북한군의 남침(1950.6.25) → 3일만에 서울 함락 → UN 군사지원약속 → 낙동강경계선 사수 → 인천상륙작전 → 압록·두만강 경계선까지 밀고 올라감 → 중공군참전 → 흥남철수작전 → 1·4후퇴 → 평택·오산 부근에서 반격 → 서울 수복 → 3·8선까지 회복 → 고착상태 → 소련의 휴전제안(1951.6) → 휴전회담 → 포로 송환 문제로 2년을 질질 끔 → 이승만의 포로 석방 → 휴전협정(1953.7.27) 및 한미상호방위조약

III. 6·25의 영향

전쟁이 끝나고 나라 꼴이 어땠느냐...
약 500만 명의 사상자가 나왔고, 엄청난 수의 고아와 이산가족이 발생했단다.​
그리고 공장 및 산업시설들이 부서지면서 나라 경제가 파탄났지ㅠㅠ
대한민국은 거지나라가 된 겨;
노답이야 이건...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뭐다?!
사기 캐릭!!
지금까지 쭉 봤겠지만, 우리 한민족은 뛰어난 민족이라고!!!
휴전 때 조건으로 건 미국의 원조로 기반을 다진 후에 모두들 으쌰으쌰하면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회복력을 자랑하며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지ㅋ
딛고 일어서는 과정은 다음에 자세히 설명해 줄게.




- O·X 퀴즈 -

1. 1950년 1월에 닉슨독트린이 선언되면서 한반도에 전운이 돌았다.
2. UN은 남한에 군사지원을 약속했다.
3. 흥남철수작전으로 서울을 포기했었지만,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다시 수복되었다.
4. 소련이 1951년 6월에 휴전을 제안하자, 국민들이 환호하였다.
5. 1953년 7월 27일 판문점 휴전협정 체결에 사인한 국가는 미국, 중국, 소련이다.







정답 : XOXXX

해설 :
1. 애치스라인이 선언됐다.
3. 인천상륙작전이 먼저다.
4. 국민들이 반대하였다.
5. 미국, 중국, 북한이다.



기출문제 보자.








자료에 인천, 작전 나오네.
인천상륙작전을 말하고 있어.
6.25 전개 과정 반드시 잘 알고 있어야 돼.​

정답 : 2번.

이전글 : 대한민국정부 수립
다음글 : 이승만 정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