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의 정책2
I. 서구열강과 제국주의
서양에서 영국을 시작으로 산업혁명이 터져. 즉 기계를 이용한 공업이 발달하면서 재화 대량 생산이 가능해 진 것이지.
그래서 물건을 조낸 많이 만들었어. 이걸 팔아야 할 것 아니야. 근데 공급량이 국내의 수요를 초과해버린 거야.
어떻게 해야겠어? 외국에 갖다 팔아야겠지?
주변의 이웃나라에 팔려고 했는데 거기도 역시 공급량이 초과돼서 물건이 남아돌아.
그래서 물건을 배에다 잔뜩 싣고 멀리 멀리 나가기 시작해.
새로운 구매자들을 찾아서! 시장개척!
유럽을 벗어나 아프리카 먼 나라에 도착해서 물건을 팔려고 했더니 이놈들이 못 팔게 하네?
그래서 그들이 그냥 실망만 하고 돌아갔을까?
아니지... 발전된 무기로 줘 팬 다음에 결국 강제로 개항을 시켜.
즉 식민지로 만든 거지.
그리고 자신의 물건들을 비싸게 팔고, 식민지의 원자재를 싸게 구입해.
구매가격은 물론 수탈 수준이야.
이렇게 식민지 확장을 하는 제국주의 서구열강은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 그리고 중국을 거쳐 결국 조선에 도착하지.
● 유럽의 산업혁명. 대량생산. 시장 확대 필요. 식민지개척. 결국 조선에 도착.
II. 조선과 서구열강의 충돌
1. 병인박해와 병인양요
유럽의 식민지 사업이 청나라까지 확장됐어.
청나라는 마지못해 광저우 하나만 개항을 했었는데, 영국이 별로 이익을 얻지 못하자 청나라에 아편을 유통시켜.
아편이 뭐야? 마약이잖아. 청나라 백성들이 마약에 중독돼서 돈 다 쏟아 붓고 헬렐레~ 거리는 거야.
청나라 정부는 빡치겠지? 그래서 아편 유통을 금지시켜.
이를 빌미로 영국이 전쟁을 일으키는데 이를 아편전쟁이라고 해. 결국 영국 승리.
아편전쟁은 1차가 있었고, 2차가 있었어.
2차 아편전쟁에서도 패한 청나라는 굴욕적인 조항을 담은 베이징 조약을 영국과 프랑스와 맺어.
그 조약을 알선한 대가로 러시아는 연해주를 갖게 되거든? 여기서 우리 조선과 문제가 생긴 거야.
안 그래도 코 크고 머리 노란 놈들이 자꾸 보여서 불안불안한데, 불곰국 러시아 놈들이 청나라한테 땅을 뺏어서 바로 위 연해주에 딱! 자리를 잡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흥선대원군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
그때 천주교 신도들이 대원군에게 접근해서 영국과 프랑스와 동맹을 맺으면 러시아 놈들이 감히 공격해 내려오지 못할 것이니, 프랑스 선교사를 한번 만나서 얘기를 해보라고 해.
솔깃한 대원군은 선교사를 통해 프랑스 정부를 움직이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대원군은 프랑스 선교사들은 조선에 쓸모없는 놈들이라 판단하여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해.
이때 남종삼을 비롯해 천주교 신도 8000여명과 신부들을 처형하는 엄청난 일을 저질러.
이를 1866년 1월 병인박해<★★★★>라고 해.
근대태동기의문화1에서 박해 설명 할 때 나중에 설명한다던 박해가 바로 이 사건이야.
이 무지막지한 병인박해에서 생존한 리델 신부가 청나라로 탈출하여 프랑스 동양함대 사령관 로즈<★>에게 박해 사실을 알려.
그래서 프랑스는 이를 명분으로 조선에 군대를 이끌고 강화도로 침략을 한단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병인양요!
총 2차로 치러졌는데, 1866년 8월에 1차 침입 시에는 강화 해협으로 서울 양화진까지 와서 그냥 연안 측량만 하고 돌아가.<★> 탐색전이 시작된 거지.
그리고 한 달 후 2차 때는 전함 3척, 포함 4척, 그리고 2000여명의 병력으로 서울의 관문인 강화도에 상륙해서 9월 18일에 강화부를 점령해.
하지만 10월1일 정족산성에서 우리 조선군 600여명이 프랑스군을 물리쳐. 문수산성에서는 한성근<★>, 정족산성에서는 양헌수가 승리!<★★★★>
전투이름과 장군들 이름 꼭 외워!
이렇게 되어 프랑스는 10월 5일에 결국 퇴각한단다.
우리가 병인양요에서 승리하여 그들의 요구를 막아 내긴 했지만, 조선의 피해가 더 컸어.
프랑스 놈들이 강화도의 문화재와 보물들을 엄청나게 약탈하고 외규장각을 불태워 소실시켜버렸지;<★★★★★>
이때 약탈당한 조선왕조의궤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발견되었고, 2011년 현재 5년마다 갱신이 가능한 대여 방식으로 반환되어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
2. 오페르트 도굴 사건
병인양요가 있은 지 2년 뒤인 1868년<★★★>에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조선에 개항을 요구해.
근데 조선은 이를 거절.
오페르트는 충남 덕산에 있는 대원군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파내 그 유골을 인질로 잡아두고 대원군을 협박하여 통상을 하려고 했어.(프랑스 신부와 미국 자본가가 지원해줌)<★★★★★★>
근데 파내는 도중 백성들이 돌을 던져서 저지해. 그래서 결국 실패.
이를 통해 대원군은 서양열강에 대해 더욱 강력한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지.
3. 신미양요
이번에는 미국이 어슬렁거려.
병인양요가 있던 그 해인 1866년 7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평양<★>에 들어와서 통상을 요구하며 조선 백성들을 약탈한 사건이 있었어.
근데 우리 조선 남자들 뭐라고?
다 예비군 ㅋㅋ
분노게이지 폭발한 조선 백성들은 양키들이 잠든 새벽에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우고, 선원들 역시 몽땅 다 타타타타타~
이를 제너럴셔먼호 사건이라고 해.
이 사건을 선교사한테 전해들은 미국은 이를 구실로 조선에게 배상금과 불평등 조약을 강요하지.
하지만 대원군은 쿨하게 거절.
이에 미국은 5년 후인 1871년 4월<★★>에 아시아함대 5척의 군함으로 1230명을 이끌고 강화도로 침공해. 이 사건이 바로 신미양요야.
무기의 화력에서 밀렸던 조선은 참패를 당한단다.
초지진·덕진진·광성보가 점령당하면서 어재연이 이끄는 조선군은 엄청 뚜드러 맞아 ㅡㅜ<★★★★>
하지만 우리 조선군의 끈질긴 저항 끝에 미군은 결국 퇴각을 하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서 서양열강을 물리친 조선은 더욱 통상수교거부정책을 굳건히 하였고, 전국에 척화비를 심어.(1871,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운다)<★★★★>
● 병인양요(1866) : 병인박해로 인하여 프랑스군의 강화도 침략. 2차로 이루어짐. 문수산성-한성근,정족산성-양헌수. 강화도에 있는 문화재 약탈당함. 외규장각 소실. 조선왕조의궤 프랑스로부터 대여.
● 오페르트 도굴 사건(1868) : 남연군 묘 도굴 시도. 백성들에게 저지당함.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의지 굳건.
● 신미양요(1871) : 제너럴셔먼호 사건(1866)을 이유로 미군이 강화도 침략. 초지진·덕진진·광성보에서 어재연 장군 패배. 조선군의 끈질긴 저항으로 미군 퇴각. 척화비.
III. 평가
대내외정책으로 흥선대원군을 평가하자면, 엄청난 개혁가이긴 했지만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왕권의 봉건체제를 유지하는 것에 불과하였고, 세계 정세를 파악함에 부족함이 있었기에 아쉬움이 남아.
- O·X 퀴즈 -
1. 병인양요 때 문수산성에서 양헌수 장군이 승리했다.
2. 병인양요 때 조선왕조의궤가 약탈당했다.
3. 오페르트도굴 사건이 있고 난 2년 후 병인양요가 일어났다.
4. 제너럴셔먼호 사건이 병인양요보다 먼저 일어났다.
5. 신미양요 때 초지진에서 어재연 장군이 대승을 거두었다.
정답 : XOXOX
해설 :
1. 한성근 장군이 승리했다.
3. 병인양요가 2년 먼저 발생했다.
5. 초지진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기출문제 보자.
프랑스인 주교와 선교사 등이 학살되었다고 하네. 따라서 (가)는 병인박해 직후야.
비석, 서양 오랑캐, 화친 등의 단서를 보아 (나)는 척화비를 세운 시점이고.
1866년과 1871년 사이에 일어난 일을 골라보자.
1번 : 오페르트 도굴사건은 1868년. 정답!
아래는 조만간 배우게 될 내용이야.
2번 : 운요호 사건은 1875년.
3번 : 거문도 사건은 1885년.
4번 : 조불수호통상조약은 1886년.
5번 : 영남만인소 사건은 1881년.
정답 : 1번.
덕산 묘소를 팠다네.
오페르트도굴사건 1868년 이후의 사실을 골라보자.
1번. 어재연 광성보 항전. 정답.
2번. 외규장각 털린 것은 병인양요.
3번. 제너럴 셔먼호는 1866년.
4번. 로즈 제독은 병인양요.
5번. 양헌수 정족산성도 병인양요.
정답 1번.
프랑스군이 외규장각 약탈했다네.
병인양요의 원인을 골라보자.
1번. 국외 중립선언은 러일전쟁 때.
2번. 함경도 방곡령은 관련 없고.
3번. 오페르트 도굴사건도 관련 없고.
4번. 위안스카이는 임오군란 때.
5번. 병인박해. 정답!
정답 5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