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의 정책1
I. 세도정치
19세기의 조선이 어땠느냐?
저번 시간에 말한 대로 개판이었지 아주...
정조가 승하한 후에 어린 왕 순조가 즉위해.
그리고 정순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하지.
수렴청정이 뭐냐면 왕의 엄마나 할머니가 어린 왕을 대신해서 통치하는 거야.
실질적인 파워를 가진 여왕이라 할 수 있지.
정순대왕대비가 경주 김씨거든?
경주 김씨가 대왕대비의 힘을 믿고 조정을 장악하여 엄청난 권세를 부려.
그 후에 경주 김씨 뿐 만이 아니라 안동 김씨, 풍양 조씨가 합세하여 중요한 관직을 두고 경쟁을 하지.
하지만 정순대왕대비가 물러나면서 경주 김씨는 얼마 못가 힘을 잃고,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두 가문이 서로 싸우면서 19세기의 세도정치를 시작해.
이 두 가문이 중요 관직을 죄다 차지하고 나머지 가문은 배척을 함.
나쁜 놈들이지...
지들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거야.
외척의 자리를 딱 잡고 앉아서 군사권까지 계속하여 독점 장악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려.
윗대가리가 썩어버리니 아랫물이 맑을 리가 있나.
지방 수령들도 중앙권력한테 다 보고 배워서 관직을 사고팔고, 백성들을 수탈하는 게 일상이야.
삼정의 문란 지난번에 설명했지?
전정·군정·환곡... 이 세 가지 제도가 악용되어 백성들을 엄청 괴롭혀.
수령들이 갓난 애기한테, 그리고 이미 죽은 사람한테도 세금을 뜯어내는 등 아주 미친 짓을 한 거지.
윗대가리들이 자꾸 뇌물을 원하니까 그걸 충당하려면 백성들을 수탈할 수밖에 없는거야.
암튼 이 세도정치시기에 백성들의 삶은 정말 힘들었단다.
그래서 집을 버리고 유망을 하는 백성들이 늘어났고, 여기저기서 농민들의 봉기가 끊이지 않았어.
왕은 뭐하고 있었냐고?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눈치만 보면서 술이나 퍼마시고 있었지~
왕권이 아예 바닥으로 추락.
아니 사실... 그들은 왕이 될 때부터 허수아비였어.
자. 봐라!
네가 안동 김씨 수장이야.
네 가문이 조정을 쥐락펴락 하려면 어떻게 해야겠어?
태종같이 똑똑하고 강한 왕이 등극해야 돼? 아니면 멍청하고 약해빠진 왕이어야 돼?
당연히 후자지.
그래서 안동 김씨는 왕족들이 좀 똑똑하다 싶으면 막 죽여.
왕의 후보에서 미리 제거하는 거지.
왕을 뽑을 때 가장 등신 같은 왕족을 골라서 앉히는 게 그놈들의 일이야.
● 순조 때 부터 세도정치시작. 주요관직은 안동김씨·풍양조씨 두 가문이 다 해먹음.
● 세도정치시기에 엄청난 부정부패가 일어나고, 백성들 수탈 심각해짐. 삼정의 문란. 왕권 몰락.
II. 흥선대원군의 등장
세도정치 속에서 순조, 헌종을 거쳐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를 하자, 안동 김씨는 또 왕이 될 등신을 모색해.
때마침 왕족 중에 제일 븅신 같은 놈이 한명 있었거든?
이하응이라고 맨날 술만 퍼마시고 안동김씨만 보면 벌벌 떨며 굽신거리는 비굴 그 자체인 사람이야.
안동김씨는 "옳거니! 이놈의 아들이라면 허수아비로 딱이네!" 하는 거지ㅋ
그래서 이하응의 아들을 왕으로 등극시켜(1863).<★>
바로 이 아드님이 고종이고, 이하응이 흥선대원군이야.
(참고로 흥선대원군은 나이도 많았고 항렬상 문제로 왕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었음)
근데 여기서 대반전!!
멍청할 줄만 알았던 이하응이 대원군이 되어 실권을 잡게 되자, 고종을 양자로 맞이한 대왕대비와 손을 잡고 안동김씨를 공격하는거야.
대왕대비는 풍양 조씨 사람이야.
당시 풍양 조씨는 안동 김씨에게 세력이 슬슬 밀리고 있었으니....
둘의 공통된 적이 안동 김씨였고, 그들을 대적할 만한 동맹군을 서로 뒤에 업은 거지.
고종이 즉위할 때는 12살에 불과하여 대원군이 섭정을 하였고, 그는 권력을 휘어잡아 안동김씨에게 아주 무시무시한 공격을 펼쳐.
그 동안 등신 같은 짓을 한 것은 다 훼이크였던거야!!!
안동 김씨는 결국 흥선대원군에게 쳐발리고, 풍양 조씨도 함께 침몰...
이리하여 세도정치는 막을 내린단다.
●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등장.
● 흥선대원군이 세도정치를 종결시킴.
III. 흥선대원군의 대내정책
흥선대원군은 왕권을 강화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것이 주 목적이었어.
태조대왕 이래로 조선에서 이토록 왕권이 땅에 추락한 적도 없었지.
그래서 흥선대원군은 조선을 개혁하기 시작해.
비정상적인 나라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거지.
1. 통치체제 개편
이때 당시 가장 큰 권력기관은 어디였냐?
바로 비변사야.
맨 처음 임시기관으로 시작했다가 임진왜란 후 최고기관이 됐다고 했지?
세도정치가들은 바로 이 비변사를 장악하면서 조선을 쥐고 흔들어.
그래서 흥선대원군은 이 비변사부터 때려 부수고 원래대로 권한을 나눈단다.
행정일은 의정부로, 군사는 삼군부로...
2. 서원 철폐(1868)
서원이 뭐야? 사림들 뽑아내는 곳이지?
원래는 선현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고, 학문을 연마하는 신성한 곳이 조선후기에 가면서 변질돼.
제사를 한다는 등의 이유로 수령한테 자꾸 돈을 가져오라고 하는 거야.
서원의 힘이 막강해서 수령도 이를 거절할 수가 없어.
그래서 수령은 백성들 폭풍 수탈 ㅡ.ㅡ
이 서원이 바로 수탈의 근원지가 된 거지.
흥선대원군은 꼭 필요한 47개만 제외한 모든 서원을 철폐해.<★★★★★>
또한 덤으로 명나라 황제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만동묘를 없애버려.<★>
이 만동묘가 화양서원에 있었는데, 이 곳이 바로 노론의 소굴이 되어 백성들을 조낸 괴롭혔거든...
서원과 만동묘가 부서지는 것을 보면서 양반들이 가만히 있었을까?
조선은 사실 왕만이 아닌 사대부, 즉 양반들이 이끌어가는 나라야.
그 양반들의 탄생지와 사상을 없애버리니 아주 죽을 각오를 하고 덤볐지.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이에 굴하지 않아.
그냥 폭발 크리!!ㅋㅋ
3. 법 개정
조선 초기에 조선의 헌법인 경국대전을 제정했잖아?
몸이 성장하면 옷을 수선하거나 바꿔줘야 하듯이, 법도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이 바뀌니 현실과 충돌하는 것들이 많아.
그래서 왕들은 경국대전이 제정된 후에 속대전을 만들어 계속 내용을 추가하고 수정하며 법을 보충해 왔는데...
이 보충하는 수준으로는 도저히 500년 전에 만든 경국대전을 현실에 적용할 수가 없는 거야.
따라서 대원군은 이 법에 문제가 있다고 하여 교서관에서 대전회통<★★>, 육전조례를 새로 편찬해.
4. 삼정 개혁
삼정의 문란을 두고 볼 수가 없겠지?
토지조사사업인 양전사업을 실시!
면세지를 줄이고, 토지겸병을 금지했으며, 토지 대장에 빠진 토지를 조사하여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는 땅을 대폭 늘려.(전정 개혁)
은결(조세 안 내려고 숨겨놓은 땅)을 색출하는 거지.
그리고 조선 후기부터 양반들의 특권이 된 군역 및 군포면제...ㅡ.ㅡ 이거 혁파해.
현직관리를 제외한 양반도 똑같이 군포를 내라며 호포제를 실시하는 거야.<★★★★★★>
사실 군대면제는 양반들의 가오 였는데... 이걸 밟아버린 거지.
양반과 상민의 차이점을 없애버리면서 신분제가 약화되는 결과가 초래되는데 양반들이 가만히 있었겠어?
서원까지 부서진 마당에 더 이상은 못 참겠다며 양반들이 들고 일어선단다.
여기서 움찔한 대원군은 양반들을 달래.
양반들 : 대원군 개객끼야!!! 우리 양반들을 상놈취급을 하는 거냐?! 체면이 있지, 도저히 상놈들과 동등한 취급은 받지 못 하겠다!!!!
대원군 : 헉! 왜 그렇게 흥분해 양반새끼들아. 체면때문이야? 알았어. 그럼 니네 노비들 이름으로 내라. 그럼 됐지?
양반들 : 으휴... 이 약은놈... 알았다... 그렇게라도 해서 다행이네;
어쨌든 호포법은 성공. (군정 개혁)
마지막으로 환곡은 어떻게 잡았을까?
사창제를 시행했어.<★★★>
춘대추납제도를 국가가 아닌 민간사업으로 실시하여 관리들의 개입을 막아버린 거야.
백성 중에 신망 있는 사람을 사수(사창 관리자)로 뽑아 경영하게 하면서 수령들의 환곡을 통한 수탈을 해결했단다.
5. 경복궁 중건(1865)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소실된 경복궁을 다시 세우고, 광화문 앞의 육조 거리 등 한양의 도시 구조를 복원해.<★>
선조 이후의 왕들은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에 있었거든.
대원군은 왕권이 추락한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고 보고, 위엄을 세우기 위해 경복궁을 다시 세우지.
19세기에 경복궁 중건이 쉬운 공사였을까?
이거 완전 대공사라고 ㅋㅋ
누가 지어? 당연히 백성들이지...
요역알지? 조세편에서 배웠잖아ㅋ
농사지어야 하는데 자꾸 나라에서 불러. 그리고 노가다 시키는 거야.
백성들 원성이 하늘을 찌르겠지?
또한 양반들의 묘지림(묘지에 있는 나무숲)을 베어내어 경복궁 자재로 쓰니 양반들도 반대를 해.
게다가 건설하려면 공짜가 아니지요? 돈도 엄청 필요하잖아?
그래서 원납전이라는 기부금을 받기 시작해.
말이 기부금이지 강제로 돈 많은 양반들한테 뜯어낸 거야. 특히 안동 김씨ㅋ
또한 더 많은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토지에 결두전(특별세)을 부과하고, 한양 도성의 통행료를 받았으며, 당백전을 발행해.(1866)<★★★★>
당백전이 뭐냐면 현재 존재하는 가장 큰 단위의 화폐보다 무려 100배의 가치를 지닌 돈이야.
대원군이 잠시 정신이 나갔던 것인지... 엄청난 짓을 한 겨!
이에 따라 재화는 그대로인데 시중에 돈은 엄청나게 많아져.
당연히 물가가 폭등하는 인플레이션이 초래되지.
생각해봐. 네 용돈이 한 달에 50만원이었는데 이번 달 부터 5000만원이 돼.
하지만! 너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 용돈이 100배로 오르고, 대한민국 부모님 월급도 100배로 올라.
누구나 지갑에 1000만원씩 들고 다니는 거야.
그럼 PC방도 한 시간에 15만원씩 하는 거지.
돈의 가치가 이제 완전 쓰레기 수준이 되는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돈이 발행되어 누구나 다 같이 동시에 월급이 100배가 되면 다행이지만,
현실에서는 물가 상승에 재빠르게 반응하지 못하여 10배 밖에 못 받는 사람도 있는 반면, 이 상황을 잘 이용하여 1000배 이상을 거머쥘 수 있는 사람도 생기거든.
이처럼 돈 필요하다고 국가에서 돈을 마음대로 찍어내면 엄청난 혼란이 와.
따라서 무지한 백성들은 큰 피해를 입지.
당백전 발행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저번시간에 언급했던 조선후기 대표적 디플레이션인 전황과 비교해서 반드시 알아둬.
● 통치체제 개편 : 비변사 혁파. 행정-의정부,군사-삼군부.
● 서원철폐 : 47개 제외하고 모두 철폐. 만동묘 없앰.
● 법 개정 : 교서관에서 대전회통·육전조례 편찬.
● 삼정개혁 : 양전사업(은결 색출). 호포제. 사창제(사수).
● 경복궁 중건 : 양반들에게 돈 뜯어냄(원납전). 묘지림 벌목. 당백전 발행-인플레이션 초래(전황과 반드시 비교). 결두전. 한양 통행료. 무리한 공사로 인한 백성들이 고생함.
IV . 흥선대원군의 실각
대원군이 서원 철폐 및 세도정치 혁파할 때는 백성들이 겁나게 응원했는데, 무리한 경복궁 공사 때문에 점차 백성들의 지지를 잃게 돼.
정치인이 대중에게 외면을 받아버리면 그의 힘 또한 추락하는 법.
게다가 고종도 이제 성장하여 친정(직접 통치)할 시기가 오자...
결국 1873년에 화서학파의 주요 인물인 최익현의 상소로 대원군은 실각하고 말아.<★>
● 화서학파의 최익현의 상소로 대원군 실각.
- O·X 퀴즈 -
1. 흥선대원군은 비변사를 폐지하고, 행정권은 의정부로, 군사권은 삼군부로 나눴다.
2. 흥선대원군은 조선의 모든 서원을 철폐했다.
3. 흥선대원군은 만동묘를 없애버렸다.
4. 흥선대원군은 교서관에서 대전통편, 육전조례를 만들었다.
5. 흥선대원군은 호포제를 실시하였다.
6. 흥선대원군은 양전사업을 실시하였다.
7. 흥선대원군은 흑창제를 실시하였다.
8. 경복궁 중건에 대하여 양반들은 반대하였으나, 백성들은 환호하였다.
9. 경복궁 중건을 위하여 원납전을 거뒀다.
10. 흥선대원군은 당백전을 발행하여 조선의 경제를 안정시켰다.
정답 : OXOXO OXXOX
해설 :
2. 47개만을 제외한 모든 서원을 철폐했다.
4. 대전통편이 아니라 대전회통.
7. 흑창제가 아니라 사창제.
8. 백성들도 반대하였다.
10. 엄청난 인플레이션으로 경제에 혼란이 왔다.
(가)는 흥선군이 대원군이 된 시기
(나)는 최익현이 대원군을 탄핵하는 시기네.
그 사이에 있던 일을 골라보자.
1번. 사창제 실시. 정답.
2번. 속대전은 영조.
3번. 장용영은 정조.
4번. 계해약조는 세종.
5번. 백두산정계비는 숙종.
정답 1번.
호포제에 관한 내용이네.
흥선대원군이 분부를 내렸지.
1번. 통리기무아문은 대원군 실각 후.
2번. 양전 사업은 사망 후.
3번. 나선정벌은 효종 때.
4번. 교육입국조서는 실각 후.
5번. 사창제 시행. 정답.
정답 5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