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사회1

I. 원인

임진왜란과 정묘·병자호란 때 망할 왜놈들과 청나라 놈들이 다 때려 부수고 불 질러서 양안과 호적이 멸실돼.
즉 이게 누구의 땅인지... 이놈이 양반인지 상놈인지 알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기준이 없는 상황;
세금을 못 거두어들이니 국가의 재정은 당연히 악화되겠지?
게다가 전쟁 직후라 나라가 황폐화되어 상태가 말이 아니었어.
이에 따라 호적과 토지대장을 새로 정비하고, 돈 많은 놈들한테 돈을 걷기 시작함. 어떻게 돈을 걷었냐고?
신분 및 관직을 파는 거지. 즉 국가에서 납속책이나 공명첩을 팔아서 노비를 면천시켜주거나, 상민을 양반으로 승격시켜주는 거야.
납속책은 국가가 납속에 의한 자에게 일정한 특전을 주는 것이고, 공명첩은 부유층에게 돈을 받고 판 명예직 임명장이야.

말이 어렵지?
걍 쉽게 국가가 관직 또는 신분을 어마어마한 돈을 걸고 팔았다고 생각하면 돼.

이러한 이유로 양반의 수가 급격히 증가한단다.
그토록 엄격하게 유지됐던 신분제가 무너지기 시작한 거지.
양반의 수가 늘면 어떻게 되겠어?
상민의 수가 줄어든다고...
국가에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상민층의 수가 줄어들면 국가 재정이 악화되는 거지;
공명첩 발행으로 국가재정의 악화가 단기적으로는 해결이 됐을지 모르나, 시간이 갈수록 세금이 더욱 걷히지 않아서 나라 살림은 계속 어려워져;
암튼 공명첩의 발행은 이렇게 조선의 신분사회동요에 시발점을 제공했단다.

II. 구체적인 모습

1. 양반

위의 표처럼 양반은 숫자가 많아져서 3가지 종류로 나뉘게 된단다.
한양에서 권력을 휘어잡고 잘나가는 권반.
향촌에 내려가서 글공부나 하는 그냥 보통 품질의 향반(재지사족).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지꼴 난 잔반들...

향반과 잔반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경제력이야.
향반은 그래도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땅이 있어서 지대를 받으면서 공부할 여유가 되는데,
잔반은 거지야 완전;
땅이 없어서 공부는 커녕 먹고 살기가 빡빡해ㅠ
조선후기에는 이런 잔반들의 수가 엄청 늘어난다고.
양반들이 좋아하는 성리학에 따르면 양반은 생업에 종사하지 않고 공부를 해야 하는데 돈이 없는 상황에서 이게 가능하냐고;
양반의 체신을 다 버리고 임노동자가 되거나, 밭을 갈며 농사일 해야지 뭐 ㅠ

2. 중인

중인들은 저번에 말한 대로 '서얼'과 '하급관리 및 전문기술자들'이야.
후기에 재미있는 사건이 발생해.
바로 신분상승운동!

서얼은 영·정조 때 수차례의 신분상승운동을 통해서 양반 신분을 얻은 사람들이 있어.<★​★​> 즉 성공한 거지!
박제가·유득공 같은 사람들은 임금님께 상소를 올려서 스스로 신분을 상승시켜 규장각 검서관이 되었단다.
또한 청요직 진출이 부분적으로 허용되었어.
그리고 철종 때는 서얼들에 대한 차별이 없어지지.(신해허통. 1851)
반면에 전문직 중인들은 철종 때 대규모로 신분상승 및 청요직 진출을 소청했지만 실패했다는 것을 기억!<★​>

3. 상민

상민은 돈 많은 경영형 부농과 돈 없는 임노동자로 나뉘었어.
이 돈이라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더라도 그 힘은 무시무시한 거야.
잔반 따위는 부농한테 상대가 안돼.

A(부농) : 나으리~ 돈 빌려줄 깝쇼? 새로 태어나신 도련님 굶겨서야 되겠습니까?
B(잔반) : 오냐. 그래. 이 고마움 잊지 않겠다. 거기 두고 가거라.
A : 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 하십쇼~

3달 후....

A : 나으리~ 지난번에 빌려드린 돈은 언제 갚으실 겁니까?
B : 내 다음 달에 열리는 과거에 급제해서 녹봉을 받으면 너한테 맨 처음으로 갚겠으니 재촉하지 말거라.
A : 과거급제는 하실 수나 있으십니까?(비아냥 비아냥~)
B : 뭣이라?! 네 이놈! 천한 것이 양반을 능멸하려는 게냐? 썩 물러가거라.
A : 예~ 죄송합니다. (쳇. 두고 보자...)

또 3달 후...

A : 나으리! 급제 하셨습니까?
B : 그... 그게 내 조상들이 남인출신이라 조정에서 받아주지를 않는구먼. 미안허이. 내가 다음번에는 실수 않겠네. 그나저나 쌀 1가마만 더 보태주시게.
A : 말도 안되는! 내 돈 내놔라 이 사기꾼아!
B : 네... 네 이놈. 국법이 지엄하거늘 어찌 상놈이 양반한테 그런 망발을 하는 게냐.
A : 닥치시오. 내 관아에 고변하여 돈을 뜯어내고 말리라.
B: 이...이보게. 잠깐. 흠... 내 양반의 신분을 팔 테니 이 족보나 사가거라.
A : 진작 그렇게 나올 것이지... 내가 비싸게 쳐줄 테니 내일 내 집으로 족보 들고 오슈.
B : 알았네...( 나라가 망할 징조로다...)

이런 식으로 부농들이 잔반한테 족보를 매입하거나 족보를 위조하는 행위도 빈번히 일어나.
공명첩으로도 양반 신분을 살 수 있지만 꽤나 비싸단 말이야. 따라서 이런 불법적인 매매가 성행한 거지.

4. 천민

천민은 신분제 동요가 일어나니 그 틈을 타서 도망하는 자들이 속출해.
상황이 이러니 나라에서는 아예 세금을 더 거둬들이기 위해 천민을 상민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한단다.
영조 때는 일천즉천을 폐지하고 종모법을 시행(1731)해서 엄마가 상민이면 엄마의 신분을 물려받아 상민이 될 수 있었지.
일천즉천 모르면 안된다... 다 얘기한 거에요.
게다가 다시 말하지만 순조 때는 중앙관서의 공노비를 해방시켜 상민으로 만들기도 했어.(정조 때 부터 추진 시작)

III. 향전

이런 신분질서동요 속에 싸움이 일어나.
바로 향전이야. 향촌의 전쟁!
부농들이 족보를 사서 양반이 됐잖아. 그치만 근본이 천하여 권반까지는 갈 수는 없었어.
평소에 글을 읽은 것도 아니고, 노론 출신도 아니고...
그러므로 이들은 한양 진출보다는 향회(양반들로 구성된 지방자치회의. 조선후기에 사족의 향촌지배력이 약화되고, 특히 정조 때 수령이 향약을 주관하는 등 관권의 힘이 강화되면서 부세자문기구로 변질되어 백성들을 괴롭힘)를 장악하여 향촌 사회에서 영향력을 키우려고 해.
향촌에서는 부농 출신 짭퉁 양반이 비단옷 쫙 빼입으며 대갓을 쓰고 뒷짐 지며 에헴 하고 지나가는 거야.
그러니 오리지날 양반이 그걸 봤을 때 어떻겠어? 어처구니가 없겠지?
잔반이야 뭐 지 먹고 살기 바쁘니 이런 거에 크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는데, 향반들이 보기에는 눈꼴 시린 거야.

C (향반) : 네 이놈. 상것이 양반을 보고도 인사를 안 하느냐?
A (부농) : 나 불렀소? 내 부친은 XXX고, 내 조부님은 선대왕 때 이조참판을 지내신 XXX이신데 어찌 상것이라 하는 게요?
C : 허이구. 네놈이 B의 족보를 사들인 것을 모를 줄 아느냐?
A : 뭔 개소리? 날이 더우니 여러 양반이 미치는구나.
C : 뭐...뭐야?! 이...이... 이놈이!!!! 매를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A : 나 양반이요. 양반! 잘 안 들리면 귀싸대기를 한대 쳐드릴까?
C : ......ㅡ.ㅡ!?

이에 빡돌은 C가 관아에 가서 사또를 만나 A놈이 불법적으로 족보를 사들였다고 고변을 해.
그러나 사또는 이미 A에게 뇌물을 받아먹은 지라.... A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어.

사또 : 흐...흠... 내가 알기로 A는 XXX의 자손이 맞는 것 같은데...에헴; 어찌됐든 내 알아보리다.
C : 부탁하오. (와... 이 사또 놈. 뇌물 받아쳐먹었구나. 벼슬하는 자까지 이렇게 썩었다니....)

이미 수령과 신향(새로운 양반)들은 한통속이 되어 구향(오리지널 양반)들을 능욕하고 있었으니...<★​>

구향들은 화가 치미는 거지.
게다가 구향들의 마지막 자존심인 향안과 향임, 그리고 향약까지 신향들이 침범해 오기 시작하는 거야.

cf)
향안 - 유향소 명부. 추천인을 통해 구성원들의 토의를 거쳐 신분적 하자가 없을시 향안에 등록되어 향회의 구성원이 됨. 여기에 오르면서 비로소 진짜 양반이 되는 것.
향임 - 유향소의 관리.
이것들은 양반들의 권위체제를 빛내주는 역할을 함.


여기에 맞서 구향들은 발악을 하기 시작해. 신향들과 차별화 작전을 펼치는 거지.
"우리는 근본도 없는 네놈들과 다르다! 더러운 종자들 같으니!"
그래서 문중의식을 고양하고 문중서원이나 사우 건립을 확대했으며, 보학이 발달해.
보학! 족보 달달 외우는 거지. 글도 읽을 줄 알겠다, 공부머리도 있겠다 하니 차별화가 가능한 거야.
(사당, 사우, 서원, 보학은 걍 조상님들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면 됨. 다시 말하여 신향의 조상은 상민이지만, 구향의 조상은 양반이니 고귀한 혈통이라는 점에서 차별화 하려고 노력한 것임.)
게다가 향교·서원 등의 학생 명단인 청금록을 내세워 신향과 차별하려고 했단다.
또한 같은 성끼리 모여 사는 사족들의 동성촌이 증가하고, 마을에서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동약(촌락의 약속)을 실시했어.
이렇게 구향들이 유학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조선후기에 가부장적인 풍습(장남상속집중, 호적기입남자부터, 양자입적)이 많이 생겨난다는 것을 기억하렴.

● 호적과 토지대장을 새로 정비하는 등 임진왜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납속책(일정한 특전)과 공명첩(명예직 임명장)으로 인하여 신분제의 동요가 일어남. 양반의 수가 엄청 많아짐.
● 양반 : 권반·향반·잔반으로 구분됨. 잔반의 수가 많아짐.
● 중인 : 신분상승운동. 서얼은 성공(박제가·유득공. 규장각 검서관. 청요직 진출 부분적 허용. 신해허통(철종)). 중급관리 및 전문기술자는 실패(철종 때 대규모 소청).
● 상민 : 부농이 불법적으로 족보를 위조하거나 사들이는 일이 빈번.
● 천민 : 도망노비속출. 종모법(영조). 공노비해방(순조)
● 향전 : 구향(향반) VS 신향(부농출신 양반). 향안·향임·향약의 영역에 신향들이 침범. 신향이 수령과 선을 잡고 향회 장악. 구향들의 차별화 작전-문중서원·사당·사우·서원·보학·청금록·동성촌. 가부장적 풍습

- O·X 퀴즈 -
1. 임진왜란 후 호적과 토지대장을 새로 정비하였다.
2. 납속책은 부유층에게 돈을 받고 판 명예직 임명장이다.
3. 조선 후기에는 양반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4. 서얼은 신분상승운동 결과 청요직 진출이 부분적으로 허용되었다.
5. 정조 때 관리 채용에 있어 서얼들에 대한 차별이 없어졌다.
6. 조선 후기에는 족보 위조가 성행하였다.
7. 조선 후기에 향전이 일어나 신향과 구향이 대립하였다.
8. 신향은 향회를 장악하여 향촌 사회에서 영향력을 키우려 하였다.
9. 조선 후기에 문중서원이나 사우 건립이 확대되었다.
10. 조선 후기에 동성촌이 증가하였다.




정답 : OXOOX OOOOO

해설 :
2. 공명첩에 대한 설명.
5. 철종 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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