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통치체제

I. 중앙관직의 변화

임진왜란을 거쳐 조선 후기가 도래하는데...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모든 면이 싹 다 바뀌어.
이씨 왕이 그대로 계승하여 조선이지, 이건 완전 다른 나라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큰 변화가 일어나지.

이번 시간에는 정치 및 군사 면에서의 변화를 볼 거야.
주목해야 할 정치기구는 비변사, 삼사, 전랑!
조선후기 때 매우 중요하고, 파워가 막강했던 기관이지.

1. 비변사

조선전기에는 의정부 6조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어.
근데 후기에 가서는 비변사가 의정부를 누르고 최고 회의 기구가 돼.
비변사가 무엇이냐 하면은...
비변사는 여진족과 왜구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삼포왜란​(1510) 직후 중종 초(1517)에 설치한 군사전략기구야.<★​★​★​>​
근데 이게 임시기구란 말이지. 즉 원래는 변란이 수습되면 없어져야 함.
하지만 명종 때 을묘왜변이 일어나자 "오 이거 안 되겠다. 비변사 걍 없애지 말고 계속 두자."해서 상설기구가 돼.
그리고 임진왜란이 터지자 이제는 비변사가 국가 최고회의기구가 된거야.<★​★​★​★​★​>​
전쟁이 끝난 후에도 비변사는 해체되지 않고 조선후기 세도정치시기까지 쭉 핵심권력기관으로 기능했어.<★​★​>

군사에 관한 일 뿐만이 아니라 나라의 중요한 행정일까지 전부 비변사에서 결정하니까 의정부는 그냥 유명무실하게 됐단다.
이건 비정상적인거야. 전쟁 상황도 아닌데 비상사태처럼 군사전략기구가 다른 기관들의 권한을 흡수해서 모든 것을 견제 없이 진행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
비변사를 장악한 신하가 정권과 군권을 한꺼번에 쥐락펴락하게 되거든.
행정권과 군사권을 휘어잡으면서 신하들의 힘이 극대화 되는겨.
반대로 왕권은 땅바닥으로 추락하는 게지...
비변사를 조정 대신들이 장악을 하면 왜 왕권이 약해지느냐?
병권을 비변사에서 쥐락펴락 할 수 있거든.
즉 군대가 왕의 명령이 아닌 비변사 대신들의 말을 따르게 됨.
왕 맘에 안 들면 군사를 일으켜서 궁궐로 쳐들어갈 수도 있는 상황.

비변사의 구성원으로는 정승(의정부 의정 제외)들과 6조판서 중에 공조판서를 제외한 5명, 그리고 훈련대장과 강화유수 등 국가 중요관원들로 이루어져.
훈련대장이 누구냐면 조선 최고의 정예 군대인 훈련도감의 수장이야.
강화유수는 강화도 사또. 왜 하필 강화도냐고?
강화도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야. 전쟁나면 왕들이 피신갈 수 있는 곳.
그래서 강화유수를 끼워준 거임.
임진왜란 후부터는 비변사 구성원이 확대되어 참판, 각 군영 대장 등이 추가된다는 것을 기억!

2. 삼사

삼사는 언론기관이잖아.
양반들의 공론이 반영되어 왕이나 신하들을 쪼아대는 거지.
원래는 이 삼사가 청렴하고, 강직하고, 똑똑한 양반들로 구성되어 왕과 대신들이 부패하지 않도록 잘 견제하고 감시했거든.

근데 붕당정치에서 악용돼.
삼사에 자신의 붕당사람들을 채워 넣으면서 상대 붕당을 공격하거나 자신의 붕당을 비호하는 등...
지들에게 유리한 여론만 만들어내서 공론화 시키는 거지.

3. 전랑

그리고 전랑!
이조의 정랑과 좌랑을 뜻하는 거야.
이조가 뭐야? 인사부야 인사부!
이조 전랑은 인사권을 갖고 있는 자리라고!!
즉, 문관과 무관을 채용·해고 및 승진·강등을 결정하는 요직 중에 요직이야.
품계는 그리 높지 않지만 당연히 파워가 하늘을 찔렀겠지.
어때? 딱 봐도 감이 오지?
삼사와 마찬가지로 당연히 악용되지 않았겠어?
자기 붕당사람들만 중요한 자리에 채용하고 승진을 주게 돼.

주요 권한으로는 낭천권, 자대권, 통청권이 있어.
낭천권은 과거에 합격하지 않은 자를 추천하는 것이야.
공시생들이 봤을 때 대박 미친거지?
누구는 시험 안봐도 걍 공무원 되는 거임;
자대권이 뭐냐면 자신의 후임을 왕이 정하는 게 아니라 자신 스스로가 정하는 거야.
당연히 자신의 말을 잘 따르는 꼭두각시 같은 후배를 자리에 앉히겠지.
전랑직에서 물러나도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통청권은 삼사에 대한 인사도 결정할 수 있는 거야.
언론을 주도할 수 있는 힘이지.
대박 사기적으로 막강한 파워를 갖고 있는 관직이지?
전랑 자리에 앉게 되면 정승까지는 뭐... 탄탄대로야!!
너무 비정상적인 관직이라는 거지.
파워가 너무 심각하게 몰리는 문제가 많은 자리라고...
그래서 전랑의 권한을 축소하는 시도가 이루어져.
낭천권은 선조 때, 통청권은 영조 때 폐지됐다가 정조 때 다시 부활했다 폐지!
자대권은 숙종 때 폐지됐다가 다시 부활, 영조 때 폐지 됐다가 다시 부활, 정조 때 가서야 드디어 완전 폐지가 돼.

● 비변사 : 군사전략기구. 임시(삼포왜란) → 상설(을묘왜변) → 최고기구(임진왜란 ~ 세도정치). 의정부의 유명무실화. 왕권약화. 구성원 - 정승·5조판서(공조판서제외)·훈련대장·강화도유수
● 삼사 : 언론기관. 붕당정치에 악용됨.
● 전랑 : 이조정랑 + 이조좌랑. 인사권을 갖고 있음. 붕당정치에 악용됨. 낭천권(과거에 합격하지 않은 자를 추천. 선조 때 폐지)·자대권(숙종·영조 때 폐지되었다 부활하였다 하다가 정조 때 폐지)·통청권(삼사 인사 결정. 영조 때 폐지되었다 부활. 정조 때 폐지).

II. 군사제도의 변화

조선 전기에는 5위 영진군 체제였잖아.
이게 임진왜란을 거쳐 후기로 가면서 체제가 바뀌어.
5군영 속오군 체제로!
신식무기의 개발과 군사 전술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기에 체제 자체가 바뀔 수밖에 없었지.

5군영은 중앙군이야.
아래 표와 그림에 나와 있는 위치랑 이름, 그리고 설치한 왕을 외우렴.
5위는 한양만 방어를 한 군대였는데, 5군영은 방어지역을 경기 일대까지 확대시켜.
가장 중요한 5군영의 핵심인 훈련도감<★​>에 대하여 설명하자면...
임진왜란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군대 편제를 바꾸기 위해 설치되었어.<★​★​★​>​
그들은 총을 쏘는 포수, 활을 쏘는 사수, 창을 쓰는 살수 이렇게 삼수병으로 이루어졌는데,<★​★​★​>​ 급료를 받는 상비군(직업군인)<★​★​>​으로 구성돼.

걍 군역 치르고 대충 훈련받는 일반 백성들이 아닌, 직업으로 삼고 장기간 복무하는 전문 군인들! 조선의 정예부대인 셈이지!
직업군인들이니 봉급을 줘야 할 것 아녀.
이들의 봉급을 주기 위해 거두어들인 세금을 삼수미라고 해. 명칭 기억해둬.
이렇게 훈련도감이 태어난 후로 어영청, 총융청 같은 나머지 군영들이 추가되어 5군영체제가 완성이 된단다.

속오군은 지방군들이야.
농병일치로 평상시에는 농사짓다가 비상시에 무기를 들고 동원되는 예비군으로 이루어졌지.
원래 조선전기에는 신분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죄다 군역의무를 졌는데 양반들이 군역을 회피하며 빠져 나가면서 점점 상민이나 노비들로 구성되었음.
이들은 진관체제로 운영이 됐어.
조선 전기에 잠깐 눈에 바르라고 했던 진관체제와 제승방략체제에 대해 설명해 줄게.

진관체제는 세조 때 설치된 것인데, 각 고을마다 진과 관을 설치하여 수령의 지휘 하에 지역단위로 방어를 스스로 담당했어.<★​>
소규모로 운영된 거지.
해적이나 도적들, 그리고 외적들이 침입하면 각 지역마다 알아서 해결을 하니 번거롭지 않은 편리함이 있었지.
근데 문제는 외적의 숫자가 엄청나게 몰려오면 취약하다는 거야.
소규모 방어체제 이다보니 개떼처럼 몰려오면 다굴당할거 아녀;
초기에 여진족과 왜놈들이 대량으로 쳐들어오니 취약함을 보이자, 명종 때 제승방략체제로 바뀌어.

제승방략체제는 대규모로 운영하는 거야.
밀집방어체제지!
대군이 몰려올 때를 대비하여 만든 형태야.
진관체제와 달리 규모가 크니까 대규모의 외적이 쳐들어와도 버틸 수가 있는 겨!
버티다 보면 근처의 진에서 원군이 와. 이렇게 밀집을 하여 조선도 대군이 형성되는 거야.
군사들이 모여서 대군을 형성하면 한양에서 장수(사령관)가 내려와서 총 지휘를 하지.
임진왜란 당시에는 제승방략체제였어.
이게 운영만 잘되면 외국과의 전쟁에서 꽤나 유용한 체제거든.
하지만 위험성 역시 상당하지.
임진왜란 초기에 쳐발렸잖아;
왜놈들이 부산에 상륙하여 한양으로 진격하고 있을 때, 제승방략에 따라 군사들이 모여서 충주에 대군이 형성이 됐고 북방오랑캐를 물리쳤던 조선 최고의 장수라 칭송받던 신립장군이 한양에서 내려와.
근데 신립장군의 발컨으로 인하여 충주에서 왜군한테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어;
그 다음 전투는 누가해?
이미 근처에 있는 대군들이 다 모여 버려서 또 싸울 부대가 없는 거야.
후방군이 없다는 거지;
한마디로 제승방략체제는 단 한판 승부의 싸움이야.
충주에서 조선군이 대패를 하자 왜놈들은 평양까지 쭉쭉~ 밀고 올라갈 수 있었던 거란다.
한번 지면 끝이라는 것이 제승방략의 첫 번째 단점이야.
두 번째 단점으로는 신속성이 떨어져.
적이 쳐들어오면 진관체제는 걍 그 자리에서 무기를 들고 싸우면 돼.
근데 제승방략체제는 지역단위가 크니까 모이고 모인 다음에 적이 공격하고 있는 고을까지 가야 한다고.
거기다가 한양에서 사령관이 내려오는걸 기다려야 함;
모이는데도 시간이 소비되고 이동하는데도 오래 걸리니 도착을 해보면 이미 황폐화 돼있는겨;
실제로 왜군이 쳐들어왔을 때 사실 경상도에서 대군이 집결하여 대전투가 한번 치러졌어야 했어.
하지만 왜군이 엄청 빠르게 치고 올라오니까 조선군은 제대로 모이기도 전에 경상도 일대를 다 털려버린거지;
이래서 안되겠다 해서 다시 선조 때 속오군체제(진관체제)로 변경;

● 5위·영진군 → 5군영·속오군
● 5군영 : 중앙군. 훈련도감(조선정예부대. 임진왜란 휴전협상 때 설치. 삼수병. 직업군인. 삼수미) + 어영청 + 총융청 + 수어청 + 금위영. 표 암기.
● 속오군 : 지방군. 예비군. 시간이 갈 수록 상민과 노비로만 이루어짐. 진관체제(세조) → 제승방략체제(명종) → 속오군체제(선조)
● 진관체제 : 각 고을마다 진과 관을 설치하여 스스로 방어. 소규모 방어체제. 대규모의 적이 쳐들어오면 매우 취약
● 제승방략체제 : 밀집방어체제. 대규모 방어체제. 버티다 보면 옆의 진에서 원군이 옴 + 중앙에서 총사령관이 내려옴. 한번 지면 끝. 신속성이 매우 떨어짐.

- O·X 퀴즈 -
1. 조선후기 때는 비변사가 최고 회의 기구가 되었다.
2. 이조판서는 비변사의 구성원이 아니었다.
3. 비변사는 임진왜란 때 처음 설치되었다.
4. 통청권은 삼사에 대한 인사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다.​
5. 조선후기 군사제도는 5군영·속오군 체제였다.
6. 훈련도감 운영을 위하여 삼수미를 거둬들였다.
7. 진관체제는 세조 때 설치되었다.
8. 제승방략체제는 대규모 밀집방어체제다.
9. 진관체제는 신속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10. 어영청은 숙종 때 설치되었다.




정답 : OXXOO OOOXX

해설 :
2. 공조판서가 아니었다.
3. 삼포왜란 직후 처음 설치.
9. 제승방략체제에 대한 설명.
10. 인조 때 설치되었다.​











광해를 폐하여 군으로 봉한 것은 인조지.

1번. 이시애의 난은 세조 때.
2번. 초계문신제는 정조.
3번. 총융청과 수어청은 인조.
4번. 전분 6등법은 세종.
5번. 나선 정벌은 효종.

정답 3번.











비변사를 중심으로 권력을 독점한 시기는 조선 후기지.

1번. 을사사화는 조선 전기 명종 때. 정답.
2번. 홍경래의 난 ㅇㅋ
3번. 삼정이정청 설치 ㅇㅋ
4번. 동학 창시 ㅇㅋ.
5번. 이양선 ㅇㅋ.

정답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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