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정치

I. 사림의 분열

'사림의 대두와 사화' 편에서 설명했듯이 사림세력이 훈구파와 4번의 사화를 거치며 마지막의 승자가 됐지?
사림이 훈구파를 이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물량.
서원에서 엄청난 물량이 계속해서 뽑아져 나왔기 때문에 사화에서 그렇게 피해를 당하고도 결국 승리함.

이리하여 훈구파는 몰락하고 사림이 조정을 장악한 상황에서....
사림은 여전히 서원에서 계속 물량이 뽑아져 나와.
어떻게 되겠어?
벼슬하고 싶은 사람의 수는 많은데 관직의 수는 정해져있으니 서로 경쟁이 붙겠지?
그래서 이제는 사림끼리 편을 갈라서 싸우는 거야.
이 편을 바로 붕당이라고 해.
뭐를 놓고 싸우느냐? 특히 관직 중에서 전랑 같은 요직을 두고 싸우지!

● 사화 → 사림 승리·훈구파 폭망 → 사림의 수가 많아짐 → 사림끼리 분열 → 붕당정치의 시작

II. 붕당정치의 시작

1. 동인과 서인의 탄생

선조 때 의정부사인이라는 관직을 갖고 있는 심의겸이라는 사람이 영의정 집에 방문을 해.
근데 그가 거기서 김효원을 본거야. 김효원은 당시 벼슬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뛰어난 글솜씨로 사림들로부터 칭송받고 있던 선비였어.
심의겸은 문장으로 유명한 선비가 세도가인 영의정 집에 들락날락 거리는 것을 보고 그를 청렴치 못한 선비라며 속으로 멸시하게 됐지.

후에 김효원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고, 때마침 이조전랑<★​★​★​> 오건이 사직을 하면서 후임자로 김효원을 추천했어.
근데 당시 의정부사인에서 이조참의(현재의 차관보 급. 이조전랑의 상관격)가 된 심의겸이 이를 반대한 거야.<★​>​
"이 놈은 벼슬을 하기 전부터 영의정집에 드나들며 아첨이나 일삼는 자입니다. 이런 자가 인사권에 접근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난 이 승진 반댈세..."
그래서 김효원은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고 말아.

하지만 김효원은 뛰어난 능력치를 가진 사기 캐릭터라서 결국 3년 후에 이조전랑이 되지.

그리고 그는 많은 공적을 쌓은 후 또 승진을 하게 되어 이조전랑직의 후임을 정해야 하는데(자대권), 심충겸이 거론되는 거야.
심충겸은 심의겸의 동생이거든.
김효원이 어떻게 했겠어ㅋㅋ
"심충겸은 절대 안 돼!!! 꺼져!!!!"
김효원이 극구 반대를 하여 심충겸은 결국 탈락.
심의겸은 김효원이 자신과의 사적인 감정으로 동생에게 보복했다고 주장하며 분노게이지가 만땅으로 차.
그래서 둘은 앙숙지간이 됐단다.
김효원 집은 동쪽에 있고, 심의겸 집은 서쪽에 있어서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동인·서인이라고 했어.<★​★​★​★​★​★​>​
동인은 신진 사림으로 정치의 도덕성을 강조한 이황, 서경덕, 조식의 문인들이고, 서인은 기성 사림인 주기론에 입각한 이이, 성혼의 문인들이야.
이들 무리의 싸움이 사림을 중심으로 정치적·학문적 견해 차이에 따른 붕당정치의 시작이 됐단다.

김효원과 심의겸의 싸움이 패싸움으로 번져 동인과 서인이 서로 으르렁대며 티격태격하다가 시간이 흘러 정여립의 모반 사건(1589)이 터져.<★​★​★​★​★​★​>
그게 뭐냐면 정여립이라는 인물은 이이의 제자로 서인과 뜻을 함께 했었는데, 이이가 죽자 곧바로 등을 돌려 동인의 수장인 이발과 손을 잡기 시작하는 거야.
그리고 정여립은 이이와 그의 제자들인 서인을 비판하지.
서인들이 가만히 있겠어?
서인들은 왕한테 정여립을 끊임없이 무고를 하기 시작해.

처음에는 왕도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갔는데, 계속 듣다보니까 의심이 되기 시작하는거야.
그래서 결국 정여립은 관직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내려가.
전라도로 내려간 정여립은 대동계를 조직하여 '이씨는 망하고 정치는 흉한다.'는 말을 퍼뜨리면서 반역의 음모를 품게 되지.
송익필이라는 사람이 정여립의 모반 의도를 자세히 조사하고 선조한테 보고해.
그리고 선조 분노 폭발 ㅋㅋ
"정여립 이 새끼 잡아와서 사지를 찢어라!!!!!!!!!!!!!"
정여립은 선조를 피해 도망 다니다가, 결국 포기하고 죽도에서 자살을 한단다.
이 모반사건은 정여립으로 끝나지 않았어.
정여립이랑 친했다는 이유로 처형되고, 숙청된 사람들이 1천 여 명에 달했어.(1589. 기축옥사<★​★​★​>)
정여립과 가까이 지낸 동인 세력들이 아주 피를 본거지.
이렇게 해서 동인 세력이 약해지고 서인이 조선 조정의 주도권을 쥐게 된단다.<★​>​
이때 동인 숙청에 앞장섰던 인물이 정철이야.

2. 동인의 분열 및 북인과 남인의 탄생

동인과 서인 싸움에서 승리한 서인의 수장 정철의 파워가 막강해졌겠지?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권세 믿고 엄청 깝쳤어.
그러다보니 선조의 눈에 거슬렸던 거지.
사극 좀 본 친구라면 선조의 성격을 잘 알거야.
선조는 자신의 권력 유지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 조금이라도 힘이 있는 신하가 생기면 디게 무서워했어.
그래서 그는 싹부터 잘라버리지.
이순신과 광해군이 선조의 이런 성격 때문에 피를 본게야.
확실히 선조는 이렇게 신하의 권력이 좀 커지면 제거하면서 균형을 맞추는데 천부적인 능력과 냉정함이 있었음.

따라서 선조는 정철을 숙청하기 위해 꼬투리 잡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지.
그러던 어느 날! 정철이 선조한테 세자 책봉 얘기(건저(의)사건, 1591)를 했어.
"전하~ 종사를 굳건히 하려면 세자를 책봉하셔야 합니다. 어서 하시지요~"
이때다! 싶은 선조는 정철을 공격해.

선조 : 아니 이사람아! 내가 이렇게 정정한데 뭔 벌써 세자임? 나 빨리 죽으라고?
정철 : 무슨 그런 망극한 말씀을! 절대 아니옵니다. 저는 그저....
선조 : 닥치시오!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우를 봤나! 당신 나 독살한 후에 어린 왕 끼고 왕실을 능멸하려고 하는 거지?
정철 : 헐!!!
선조 : 너 귀양
정철 : (슈밤 뭐꼬이거!?)

이래서 정철과 서인들이 대거 숙청이 돼.

서인 : 헐 뭐여 이거; 갑자기?!
동인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가 ㅋㅋㅋㅋㅋㅋ
서인 : ㅠㅠ
이산해(동인) : 전하~ 다 죽이십시오! 다 죽여! 다 죽여!
유성룡(동인) : 고정 하십시오 전하... 그냥 적당히 처리하시지요...
이산해(동인) : 헐. 님 뭐임? 왜 서인한테 자비를 베풀어? 정여립 사건 기억안남? 얘들아~ 서인들 다 죽이고 싶은 사람들 다 나한테 모여라~
유성룡(동인) : 다 죽이는 것은 좀 심하잖아! 너는 앞으로 살면서 저렇게 될 일이 없을 것 같냐? 이번일 적당히 처리하고 싶은 사람들 다 나한테 모여라~
이산해 무리 : 앞으로 이제 우리는 북인.
유성룡 무리 : 흥! 그럼 우린 남인.

동인 내부에서 정여립모반사건 등을 계기로 파가 갈릴랑 말랑 하다가 이렇게 서인을 어떻게 처리할까를 두고 동인은 이제 강경파(급진파) 북인과 온건파 남인으로 확실히 나뉘어.<★​>​
서인이 조정에서 힘이 약화되자 북인과 남인이 서로 싸우기 시작하지.
즉, 선조 후반기에는 '북인 VS 남인' 구도가 형성 된거야.
처음에는 남인이 정국을 주도했는데...
이때 북인(대북)이 광해군과 겁나 친했거든.
근데 임진왜란 후로 광해군의 입지가 팍 올라가고, 게다가 선조가 갑자기 죽어서 광해군이 왕이 됐잖아?
그러니 어떻게 되겠어? 광해군을 왕위에 앉힌 북인들의 세상이 온 거지.
북인들은 광해군 재위기간인 15년 동안 서인과 남인을 배제한 채 조정을 장악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단다.<★​★​★​★​★​>​
하지만!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광해군이 폐위되면서 북인이 완전 숙청됨.<★​>
이래서 조선의 붕당 대결구도는 결국 '남인 VS 서인'이 돼.
실권은 서인이 갖게 됐어. 왜냐면 인조반정을 주도한 세력이 서인이었거든.<★​★​>​
여기까지가 16세기야.

● 이조전랑 자리에 관하여 김효원과 심의겸의 대립으로 조정세력은 동인·서인으로 나뉨 → 정여립 모반사건으로 서인이 동인을 제압 → 정철로 인하여(건저사건) 서인이 숙청될 때, 이에 대한 처리방법을 두고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나뉨 → 선조가 급사하고 광해군 즉위를 도운 북인이 남인을 제압 → 인조반정으로 인하여 광해군이 폐위되면서 북인은 폭망 → 인조반정을 주도한 서인이 정권 장악. 남인도 참여. 결국 '서인 VS 남인' 구도

III. 환국

1. 예송논쟁

이제 17세기를 보자.
현종 때 남인과 서인이 조정에서 동거를 하다가 한판 붙어!
그게 바로 예송논쟁이야.
예송논쟁은 1차(기해예송. 1659)와 2차(갑인예송. 1674)가 있었는데,<★​★​>
1차부터 설명하자면...
그때 당시에는 아들이 죽으면 어머니가 상복을 입어야 하는데, 그 기간에 대해 다툼이 있었어.
원칙대로라면 장남이 죽으면 3년, 나머지 아들이 죽으면 1년이야.
현종의 아버지인 효종은 둘째 아들이었는데, 그가 죽고 나자 조대비(자의대비)의 상복 입는 기간이 문제가 되었어.<★​★​★​★​>​
효종을 원칙대로 차남의 대우를 할 것인지, 왕이니까 특별히 장남처럼 대우할 것인지 다투게 돼.
전자를 주장한 사람이 서인이고, 후자는 남인이야.<★​>

서인과 남인은 정치사상이 달라서 이런 문제가 닥치면 싸울 수밖에 없었어.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남인이 누구야? 이들은 이황의 제자<★​>들이야.
이황의 사상은...왕은 신하가 도와주지 않아도 스스로 성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이야.
즉 왕은 특별한 존재라는 거지. 그러니 이 정신을 이어받은 남인들은 왕에게 특별한 대우를 주장한 거란다.

반면 서인들은 이이의 제자들이거든.
이이의 저서인 성학집요를 보면 왕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야.
신하들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 뭔가 부족한 존재라고.
그러니 왕을 특별대우 안하고 그냥 원칙대로 주장을 한 거야.

1차는 서인이 승리해서 조대비는 상복을 1년 동안 입게 된단다.
2차는 효종비가 사망하자 조대비가 상복을 1년 복(장남 대우, 남인 주장)으로 입을 것인가, 9개월 복(차남 대우, 서인 주장)으로 입을 것인가를 둘러싸고 일어났어.
2차는 기년복을 주장한 남인이 승리하여 조대비는 1년 동안 복을 입지.

그래도 이때까지는 붕당은 서로 비판을 하며 싸우기는 했지만, 때로는 협력해서 난국을 헤쳐 나가는 정치적 동지였어.
매우 건강한 붕당정치였지.

2. 경신환국(1680)

하지만 2차 예송논쟁에서 승리한 남인이 정권을 장악하자, 서인들의 씨를 말리고 싶어하는 거야.
지들끼리만 국정을 운영하려고!
서인도 마찬가지로 남인을 조정에서 몰아낼 생각을 해.
이때부터 비정상적인 붕당정치가 시작;
그래서 나온 게 환국이야.
환국이 뭐냐면 정권을 잡은 세력이 하루아침에 바뀌어버리는 사건이라 생각하면 쉬워.
마침 숙종은 강력한 왕권을 위해 한 붕당이 힘이 세지면 다른 붕당에 힘을 실어줘서 갑자기 뒤엎어버리는 일을 선호했어. 물갈이를 하는 거지.
이렇게 해서 정파대립이 심해진 거야.

환국은 총 3개. 경신환국, 기사환국, 갑술환국!
정권이 뒤바뀌는 거야.
그것도 갑자기!!
오늘 왕이랑 웃고 떠들며 화기애애하게 국정을 돌보다가, 갑자기 다음 날 아침에 귀양 ㅋㅋ
이게 환국이야.

처음에는 2차 예송논쟁에서 승리한 남인이 잘나갔지.
군사적·정치적으로 힘이 커지자 방자함이 하늘을 찔렀어.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허적의 유악남용사건<★​★​★​>​(허적이 왕의 물건을 허락받지도 않고 함부로 빌려서 씀;)이야.
그리고 남인이 종친과 역모를 꾀한다는 혐의가 가해지지(삼복의 옥).
이로 인해 숙종의 분노게이지가 폭발해서 남인을 탄핵하고 서인을 밀어줘.
이게 바로 경신환국!<★​★​★​★​>​
환국으로 인하여 특정 붕당이 정권을 독점하는 일당전제화의 추세가 대두되었단다.

2. 기사환국(1689)

이렇게 권력을 잡은 서인은 남인에 대한 처벌 문제로 온건파 소론과 강경파 노론으로 갈라져.<★​>​
윤증을 비롯한 젊은이들로 구성된 소론은 실용적인 성격이 강했고 국력 강화에 힘썼지.
반면 송시열을 중심으로 늙은이들로 구성된 노론은 실용보다는 명분을 중시하고 민생안정에 힘썼어.

둘이 싸워서 결국 노론이 이기고 정권을 장악해서 국정을 운영해.

그러던 중...
숙종에게 한 여인이 생겨. 겁나 이쁜 여인이...
그 유명한 장!희!빈!
숙종은 장희빈에 홀려서 자신의 조강지처인 인현왕후를 폐비<★​★​>​하고, 장희빈을 새로운 중전으로 삼아.
그리고 그녀가 낳은 아들(훗날 경종)을 원자로 삼고자 했지.<★​>​ 근데 노론이 반대를 하는 거야.
반면 남인은 장희빈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지.
이에 따라 "숙종+장희빈+남인 VS 노론" 대결구도가 형성되고...
결국 숙종이 노론을 까버리고, 남인에게 다시 손을 들어줘.<★​>​
이게 바로 기사환국.<★​>

3. 갑술환국(1694)

그러나 다시 또 남인과 장희빈이 오만해져서 숙종을 거슬리게 해.
그 동안의 장희빈의 음모가 드러나면서 숙종의 또 다시 분노게이지 폭발ㅋㅋ
폐비됐던 인현왕후를 다시 중전으로 복귀시키고 장희빈을 내쳐(신사환국(무고의 옥). 1701. 무당 불러서 인현왕후를 저주한 것을 숙종에게 걸려서 사약 마심).
역시 장희빈과 같은 편이었던 남인도 까여.
이번에는 진짜 까임.
남인은 북인처럼 아예 조정에서 내쳐져서 다시는 전성기를 누리지 못해 ㅠ<★​★​>​
이렇게 되서 서인(노론+소론)은 다시 권력을 잡았고 세도정치 전까지 쭈~욱 권력을 유지하지.<★​★​>​

이게 마지막 환국인 갑술환국이야.

4. 영조의 등극과 소론의 몰락

갑술환국 이후에 숙종 때는 노론과 소론이 함께 국정을 운영해.
그러다가 숙종이 죽고 경종이 즉위하자 노론은 그의 이복동생인 연잉군을 세제(왕의 후계자. 세자가 왕의 아들이라면, 세제는 왕의 동생)로 삼으려고 한단다.
경종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또한 매우 병약했거든.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인 게야.
하지만 소론은 이를 기회로 삼아 노론이 반란을 일으키려한다고 하면서 공격을 하지.(신축사화. 인임사화(목호룡의 고변사건). 신임사화)
이렇게 소론이 노론에게 무시무시한 공격을 퍼붓는 도중...
갑자기!!! 경종이 간장게장꽃게장세트를 먹다가 승하해ㅡ.ㅡ
결국 연잉군이 왕이 됐단다ㅋㅋ
이 분이 바로 영조!
영조가 즉위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노론은 권세가 하늘을 찔렀겠지?
노론에게 반란의 조짐이 있다면서 공격한 소론은 어떻게 되겠어?
소론은 이제 X된거지 ㅋㅋ
을사처분 및 정미환국으로 소론을 아주 조지는 도중에...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심정으로 소론과 남인 강경파는 천한 무수리의 아들 영조가 경종을 죽였다면서 반란을 일으켜.
이게 이인좌의 난(1728)이야.<★​★​>​
하지만 이 난은 진압되고 소론은 영원히 bye bye~

● 서인주도 남인참여 정권에서 예송논쟁이 일어남 → 1차(기해예송. 서인-차남 대우,동인-장남 대우)에서 서인이 승리하여 여전히 정권 주도 → 2차(갑인예송)에서는 남인이 승리하여 정권 주도 → 경신환국. 서인이 승리 → 기사환국. 남인이 승리 → 갑술환국. 서인이 승리. 남인 폭망 → 연잉군 세제 문제를 놓고 서인의 분파인 노론과 소론의 대결 → 영조 즉위 → 이인좌의 난 → 소론 폭망

IV. 영조와 정조

시험에서 영조의 업적과 정조의 업적을 보기에 섞어 놓고, 각 왕의 업적을 골라내는 문제가 출제 돼.
누구의 업적인지 잘 기억해야 해.
표랑 함께 보자.

1. 영조

(1) 정치
노론의 지지를 얻어 천한 무수리(궁중에서 허드렛일 하는 여인)의 아들인 서자 영조가 즉위를 해.
엄밀히 따지면 정상적인 왕이 아닌 게야.
적자가 아닌 것도 크게 문제가 되는데, 무수리의 아들을 왕으로 삼다니...
명나라의 승인을 얻기도 참 민망했고 조선의 가치관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지.
하지만 노론의 파워가 막강했기에 밀어붙일 수 있었단다.
영조는 왕이 되는데 노론의 힘을 많이 빌렸지만, 일부의 소론과 남인을 등용하며 탕평책을 펼쳐.<★​>​

탕평책이란 숙종 처럼 환국을 일으키며 한 붕당을 밀어주는 게 아니라, 여러 붕당을 고루 등용하여 정치세력의 균형을 맞추는 거야.(원래 숙종 때 처음으로 인사관리를 통한 탕평책이 제시되었지만, 명목상의 탕평에 그쳤음)
영조는 성균관 앞에 탕평비까지 세우며<★​★​★​★​★​★​★​> 아주 강하게 나갔어.
완론탕평(어느 당파든 온건하고 타협적인 인물을 등용하여 왕권에 순종시킨다)을 펼쳐서 붕당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거든.
이를 위하여 산림을 부정했단다.

산림이 뭐냐면 조선 전기에는 은거한 사림이란 뜻이었으나, 후기에 와서는 재야의 공론을 주도하는 붕당의 대표이자 정신적 지주를 뜻해.
관직에서 은퇴를 했거나 관직을 나가지 않은 자로서 재야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음.
붕당이 산림을 중심으로 뭉치니까 왕 입장에서는 그의 존재는 큰 위협이 되는 거지.
영조는 평소에 산림을 욕하면서 견제하는데 크게 힘을 썼다네ㅋㅋ

또한 붕당의 물량을 뽑아내는 서원을 대폭 정리하고, 붕당싸움의 원인이 된 전랑직의 통청권과 자대권을 폐지해.
이렇게 하여 신하들의 세력 균형을 꾀했단다.
그리고 경국대전 내용 중에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운 법령들은 삭제하고, 시행할 수 있는 중요한 것들만 뽑아내어 속대전<★​★​★​>​과 의례지침서인 속오례의, 그리고 속병장도설을 편찬했다는 것을 기억하렴.
(2)경제
균역법을 시행하여 정포를 줄였어.(1750)
설명한 거니 패스할게~

(3) 사회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재판 내용이 억울하다 싶으면 상소를 할 수 있지?
재판관이 실수를 할 수도 있으니 상급재판에 다시 재판을 해달라고 요청을 하는 거야.
대한민국에서는 총 3번 재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여 3심제라고 하지.
영조 때도 이런 제도의 필요성을 깨닫고 사형수에 대해서는 3심제를 시행했어.
또한 가혹한 형벌들을 폐지했단다.

그리고 신문고 알지?
억울한 일이 있으면 북쳐서 왕한테 직접 말하는 것.
이게 연산군 때 폐지가 됐었거든.
근데 영조가 백성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하여 다시 부활시켰어.<★​>

2. 정조

(1) 정치
정조도 역시 침전에 탕탕평평실이라는 편액을 달고 영조의 탕평책을 이어받아 시행을 하긴 하는데, 살짝 변형시켜.
영조가 완론탕평을 했다면, 정조는 준론탕평을 했어.
준론탕평이 뭐냐면 붕당자체는 인정을 하되 당파의 옳고 그름을 명백히 밝히는(시시비비를 가려서) 정책을 선택하겠다는 거야.
이건 왕이 겁나 똑똑해야지만 시행할 수 있는 정책이야.
이래서 정조가 공부를 엄청 많이 한 왕이라고 유명하지.

정조는 영조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야.
정조의 아버지는 사도세자인데, 노론의 모함을 받아서 영조의 손에 죽었어.
노론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죽인 자의 아들이 왕이 되면 X되는 거잖아;
그래서 정조가 왕이 되지 못하도록 엄청난 정치적 공격을 했지.
하지만 이런 공격을 다 선방하고 정조를 왕에 앉힌 인물이 바로 홍국영이야.

홍국영은 정조가 왕이 되자 왕권을 강화시키려고 머리를 짜내.
그래서 탄생한 게 장용영!<★​★​★​★​★​★​>서울(내영)과 수원(외영)에 배치된 최정예 막강 울트라 파워 국왕의 친위 부대야.<★​★​★​★​★​>
왕에게 군사력이 생기니 노론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파워가 생기겠지?
신하가 좀 거슬린다 싶으면 장용영을 시켜 끌고 와서 조져버리니;
장용영 덕에 생긴 파워가 뒷받침이 되어 정조는 규장각을 세운단다.(1776)<★​>​
규장각은 학문을 연구하는 곳인데, 이곳에서 개혁정책이 주도되어 핵심 정치기관이 되지.
특이한 점은 박제가, 유득공, 서이수, 이덕무 등 서얼들을 검서관으로 등용<★​★​★​★​★​>​했다는 점이야.
이렇게 서얼들이 힘이 강해지니 양반의 실세인 노론이 큰 타격을 받았지.
뿐만 아니라 정조는 신진 인물이나 중·하급관리 중 규장각에서 유능한 인사를 재교육하는 초계문신제도를 실시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확장시켰단다.<★​★​★​★​★​★​★​>​
또한 정조는 수원화성을 건축<★​★​>​하고, 대전통편(경국대전, 속대전 등의 법들을 통합한 것)을 제정<★​★​★​>​했으며, 대외관계를 정리한 동문휘고를 간행<★​>했다는 것을 기억!

(2) 경제
저번에 설명한 대로 시전상인들은 금난전권을 갖고 있어.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독점권!
근데 정조가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상인들의 독점권을 폐지해버림.<★​★​>​
난전을 허용한 거야.
지금으로 따지면 대기업의 날개를 잘라버린 거나 마찬가지 ㅎㄷㄷ
정조 겁나 쎄지?
이를 신해년에 시행했다고 해서 신해통공이라고 해.(1791)<★​★​★​★​>​

(3) 사회
향약을 서원에서 주도했다고 말했지?
이러면서 국가기관이 아닌 서원이 백성들을 실질적으로 장악하여 폐단이 심각해져.
이를 고치기 위해 향약을 서원이 아닌 수령에게 직접 주관하도록 해.
노론의 기반인 서원의 힘을 약화시킨 거지.
마지막으로 정조는 공노비해방에 대한 언급을 최초로 하여 이를 추진하였고, 죽은 지 1년 후에 순조 때 관청의 노비문서를 태워버려 공노비 6만6천여 명을 해방했다는 것을 기억!<★​★​★​>

● 영조 : 완론탕평. 산림부정. 서원정리. 전랑 통청권과 자대권 폐지. 속대전,속오례의,속병장도설 편찬. 균역법. 사형수 3심제, 가혹한 형벌 금지. 신문고 부활
● 정조 : 준론탕평, 장용영, 규장각(서얼들 등용), 초계문신제, 수원화성, 대전통편, 동문휘고, 신해통공, 수령 향약 직접 주관, 공노비해방추진

V. 세도정치

정조가 죽고 나자 어린 순조가 즉위해.
탕평책이 중단되어 반대파도 죄다 제거가 됐겠다, 왕도 어리겠다, 이러다보니 노론(벽파) 신하들의 파워가 하늘을 찔렀겠지?
노론이 다른 붕당은 조정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배제한 후에 정권을 확!!! 휘어잡으면서 비로소 붕당정치가 끝이 나고 세도정치가 시작돼.
노론 내부에서도 또 분란이 일어나 밥그릇 싸움이 전개 된 거야.
노론 중에서 안동김씨와 풍양조씨가 밥그릇 싸움에 승리하면서 비변사와 5군영을 장악, 즉 행정권과 군권을 손에 쥐고 무소불위의 권세를 휘두르지.<★​>​
세도정치로 인하여 왕권이 땅바닥에 철퍼덕 내팽겨 쳐지던 시대야.
나라꼴이 정상이 아니겠지?
그러니 엄청난 부정부패가 이루어져.
관직을 실력이 아닌 돈으로 사는 꼬라지가 펼쳐진 거야.
특히 수령직의 매관매직이 매우 성행했어.

예를 들어 너 국무총리한테 30억 갖다 바치면 3년 동안 안양시 시장 시켜준대.
이게 정상이야?
만약에 너가 30억 내고 안양 시장이 됐어.
그냥 시장이 아니라 너한테 사법·입법·행정·군권까지 있는 풀파워 시장이야.
안양에 맘에 안드는 기업이나 가게 있으면 하루 아침에 문닫게 해버릴 수도 있어.
그정도로 파워가 있는 자리를 부정부패로 얻었는데, 어떻게 하겠어?
임기 내에 다시 본전이라도 찾을 마음이 생기겠지?
백성들 폭풍수탈;
이리하여 수령들과 향리들의 부패가 극에 달해.
붕당정치가 끝이 나자 조선에 더욱 암울한 시대가 찾아온 거란다.

하지만! 이 세도정치를 끝내고 백성들을 구제하고자 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흥선대원군!
이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해 줄게~
ㅂ2ㅂ2

● 순조 즉위 후 노론이 정권을 독점 → 노론 내 밥그릇싸움 시작 → 안동김씨와 풍양조씨의 승리 → 세도정치 시작. 비변사와 5군영 장악하며 극에 달한 부정부패. 심각한 수탈로 백성들 삶 피폐

- O·X 퀴즈 -
1. 이조전랑 자리를 둔 김효원과 심의겸 세력의 다툼을 시작으로 붕당정치가 시작됐다.
2. 정여립모반사건으로 인하여 동인이 권력을 휘어잡았다.
3. 건저사건 이후 서인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동인은 북인과 남인으로 나뉘게 됐다.
4. 인조반정 후 북인이 숙청되었다.
5. 기해예송 때 서인은 왕을 특별히 장남 대우할 것을 주장했다.
6. 갑인예송 때 서인이 승리하였다.
7. 허적의 유약남용사건으로 인하여 경신환국이 일어났다.
8. 영조는 준론탕평책을 펼쳤다.
9. 정조는 초계문신제를 실시하였다.
10. 정조 때 공노비 6만6천여 명을 해방했다.




정답 : OXOOX XOXOX

해설 :
2. 서인이 휘어잡음.
5. 남인의 주장이다.
6. 남인이 승리하였다.
8. 영조는 완론탕평.
10. 순조 때 해방했다.




기출문제 보도록 합시다.








영창대군을 처벌하라 하네.
광해군 때지?
그 이후에 나타난 사실을 골라보자.

1번 : 서인이 반정을 일으켰다네. 인조반정은 영창대군이 죽은 후에 일어났지. 정답!
2번 : 을사사화는 한참 전이지;
3번 : 무오사화는 더 한참 전;
4번 : 선조 때야.
5번 : 역시 선조 때.


정답 : 1번.










유성룡에게 붙는 자는 남인이지?

1번. 북인이 이끌었지.
2번. 경신환국 후에는 서인이 장악.
3번. 이언적과 이황의 제자. 정답.
4번. 서인이 기년복 주장했어.
5번. 기축옥사 주도는 서인.

정답 3번.








수원 화성은 정조지.

1번. 홍문관 설치는 성종.
2번. 균역법 제정은 영조.
3번. 초계문신제는 정조. 정답.
4번. 탕평비는 영조.
5번. 삼정이정청은 철종.

정답 3번.








이인좌의 난은 영조의 즉위 과정에 의혹을 제기했지.

1번. 숙종 때 경신환국에 대한 내용.
2번. 삼정이정청은 철종.
3번. 예송은 현종 때.
4번. 탕평비는 영조. 정답.
5번. 대전통편은 정조.

정답 4번.









규장각은 정조지.

1번. 훈련도감은 선조.
2번. 수원 화성은 정조. 정답.
3번. 나선 정벌은 효종.
4번. 간도 관리사는 고종.
5번. 이인좌의 난은 영조.

정답 2번.










초계문신제는 정조.

1번. 대동법은 광해군. 정답.
2번. 장용영 정조 ㅇㅋ
3번. 규장각 검서관 ㅇㅋ
4번. 대전통편 ㅇㅋ
5번. 금난전권 폐지 ㅇㅋ

정답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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