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건국과 발전
I. 조선의 큰 흐름
조선은 임진왜란을 전후로 조선전기, 조선후기로 나뉘어.
이름만 같은 조선, 즉 왕조만 바뀌지 않았을 뿐이지 이 두 시기는 정치·경제·사회·문화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단다.
II. 조선의 건국
1. 위화도 회군과 이성계의 정권 장악
고려 말의 대립 구도는 '권문세족 VS 신진사대부(+신흥무인세력)'라고 말했지?
여기서 신진사대부와 신흥무인세력이 이인임<★>을 비롯한 권문세족을 발라버리고 실권을 휘어잡아.
이때는 중국이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교체되는 시기였는데, 명나라가 철령이북(원나라에게 빼앗긴 땅)에 철령위를 설치하고, 그 땅을 자기들이 갖겠다고 하는 거야.
이에 따라 조정에 의견이 나뉘어져.
최영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은 명을 정벌하자고 주장했고, 이성계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은 지금 전쟁을 하기에는 너무 시기가 좋지 않다고 주장하는 거지.
우왕은 결국 최영의 편을 들어주고 명나라를 정벌하라고 명을 내린단다.
왕의 명령에 따라 명나라를 정벌하러 가야하긴 하는데...이성계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무리인거지.
'아오... 이 병력으로 싸워 이기라고? 왕 이새끼가 장난하나?;'
이에 따라 4불가론을 내세워 위화도에서 명을 정벌하러 출진한 군사들의 칼날을 죄다 궁궐로 돌려버려.<★★★>
이성계는 대군을 궁궐로 몰고 가서 최영을 숙청하여 실권을 휘어잡고 우왕을 폐위시킨 후 그의 아들 창왕을 등극시키지.
이에 따라 요동정벌은 중단되었고, 명나라는 고려가 의외로 강하게 나오니까 철령위 설치 요구를 철회했어.
이성계는 우왕을 왕에서 끌어 내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창왕도 폐위하고 둘 다 사약을 내려 죽여.
이들이 왕씨의 피를 물려받은 정당한 왕이 아니라, 사실은 신돈의 자식이라는 것이 죽이는 이유야.
진짜 신돈의 자식인지는 알 수 없지만, 승리자인 조선은 그렇게 기록하고 있음.
이성계는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을 억지로 왕위에 앉히고, 그를 조종하면서 고려를 쥐락펴락 하는 시대가 와.
공양왕은 완전 허수아비일 뿐이고... 이성계 말 한마디면 왕이 바뀌는 시대이니...
결국에는 이성계가 왕에 등극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에 봉착하게 되지.
2. 혁명파 VS 온건파
신진사대부와 신흥무인세력은 권문세족에 대항하여 함께 맞섰으나, 권문세족이 몰락한 후에 신진사대부는 이성계를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으로 둘로 나뉘게 돼.
전자를 실용을 중시하는 혁명파! 후자를 명분을 중시하는 온건파! 라고 해.
혁명파는 "이제 고려의 힘은 다 했다. 그러니 이성계 대감을 왕으로 추대하고 새로운 국가를 세우자!"
온건파는 "신하인 자가 어찌 왕이 되느냐!? 그러지 말고 적당히 뜯어고쳐 다시 고려를 정상화 시키자!"
혁명파의 수장은 정도전! 온건파의 수장은 정몽주!
이 둘을 중심으로 두개의 파가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
이성계가 사냥을 갔다가 낙마를 해서 크게 다쳐.
이때 좀 많이 다쳤어.
그래서 죽느냐 사느냐 오락가락하고 있을 때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온건파 수장 정몽주가 혁명파들을 숙청하기 시작해.
여기에 공양왕도 협력을 하지.
혁명파가 쳐발리면서 정도전까지 위험하게 됐을 때...
바로 그때! 이성계가 깨어나.
왕이랑 온건파는 이제 X된거지 ㅋㅋ
하지만 이성계는 정몽주 만큼은 죽이려고 하지 않아.
혁명파·온건파 모두의 지지를 받아 왕이 되고 싶었는데, 만약에 정몽주를 죽이면 대부분의 온건파 세력이 모두 다 자신에게 등을 돌릴 테거든.
그러나 사실 이건 이성계의 너무 큰 욕심이었어....
물론 반대파까지 모두 포용하여 왕조를 열면 당연히 좋겠지만, 지금 이성계에게는 그럴 여유부릴 만한 상황이 아니야;
언제 온건파가 다시 이성계의 등 뒤에 칼을 꽂을지 모르는 상황....
이와 같은 위태로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이성계의 5번째 아들인 이방원이 정몽주에게 술 한잔 하자고 청해.
그리고 술자리에서....
"정몽주 선생님... 고려는 이제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저의 아버님을 도와 백성들을 위해 새로운 시대를 엽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그러나 정몽주는...
"난 고려의 신하일세. 신하된 자로써 절대! 전하를 배신할 수가 없네. 이몸이 죽고 죽어 골백번~..."
이렇게 하여가와 단심가를 주고받으며 이방원의 제안을 정몽주가 쿨하게 거절해.
그래서 이방원은 '이 사람을 죽이지 않고서는 대업을 이룰 수가 없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결심을 굳히고,
선죽교에서 자신의 부하를 시켜 철퇴로 정몽주를 때려 죽여.
이런 엄청난 결단을 내리고, 과감하게 일을 추진하여 1등 공을 세운 이방원이 바로 훗날의 조선 태종이란다.
5번째 아들이긴 하지만 이렇게 무시무시한 인물이니, 형들을 제치고 왕이 될 수 있었던 거야.
어쨌든 수장을 잃은 온건파는 우왕좌왕했고, 혁명파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공양왕을 폐위시키고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지!
이렇게 해서 조선이 건국된단다.
혁명파는 조선이 건국된 후 개국공신이 되어 조정을 장악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지.
그들을 관학파라고 칭해.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런 관학파가 세조 때 이후부터는 훈구파가 돼(걍 이름만 바뀌었다고 생각해).
반면 온건파는 고향으로 내려가서 공부나 하게 되지.
시간이 흘러 그들은 지방에 유향소를 통하여 여론을 형성하고, 향약을 수단으로 농민을 장악하며, 서원을 통해 인재를 양성해.
(유향소, 향약, 서원에 대해서는 다음에 설명!)
여기의 중심적인 인물이 바로 길재라는 선비인데, 이름을 기억해둬.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더 이상 쳐박혀 공부나 하는 선비가 아닌, 중앙으로 진출을 하게 된단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3사(언론기관)라는 곳에 들어가서 훈구파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세력이 되지.
이 온건파의 후예들을 사림파라고 해.
이 둘의 관계를 간단히 말해보면....
14세기 후반에 조선이 건국되고, 15세기까지는 혁명파 라인인 훈구파가 중앙을 장악을 한단다.
하지만 연산군 때 부터 명종까지 사화의 시기인데, 사화가 뭐냐면 훈구파랑 사림파랑 붙는 거야.
여기서 훈구파가 사림파를 두들겨 패고 엄청 죽이거든?
근데 결국에는 사림파가 승리함 ㅋ
그래서 16세기가 되면 훈구파는 몰락하고, 온건파의 후예인 사림파가 조선을 이끌어가는 시대가 와.
이 스토리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해줄게.
● 위화도회군 → 권문세족 몰락 및 이성계의 실권장악 → 혁명파 VS 온건파 → 혁명파가 승리하고 이성계 등극
● 조선이 건국된 후 혁명파는 중앙기관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린 반면, 온건파는 지방으로 내려가서 세력을 형성(유향소. 향약. 서원. 길재 등) → 혁명파는 관학파를 거쳐 훈구파가 되고, 온건파는 사림파가 됨 → 연산군 때부터 명종까지 사화(훈구파 VS 사림파 대결)가 일어남 → 결국 사림이 승리하고 조선을 장악
III. 조선의 발전
1.태조
태조는 조선을 건국하고(1392), 한양으로 도읍을 옮겨서(1394)<★★★>, 경복궁을 짓는단다.(1395)<★★>
"한강 북쪽의 목멱양은 참으로 큰 명당이니 도읍을 옮기면 국운이 창성할 것입니다." 라는 조언을 듣고 한양으로 고고씽~
그리고 농본억상(상공업보다는 농업이 최고), 숭유억불(유교를 받들고 불교를 억제하자), 사대교린(선진국에게는 사대하고 후진국은 교린하자) 정책을 기본으로 하여 앞으로 조선이 나아갈 방향으로 정했지.
사실 태조는 위에서 관장만 했을 뿐 조선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은 정도전이었어.
태조보다는 정도전이 겁나 중요!!
그는 임금의 직책은 한 사람의 재상을 논정하는데 있을 뿐이라며, 재상 중심의 정치를 지향했어.(삼봉집)
조선은 왕이 아니라 사대부가 이끌어 가는 나라를 만들고자 한 거야.
입헌군주제 비스무리한 것을 생각한 거지.
이러면 누가 가장 민감해하겠어? 이성계? 아니지... 바로 이방원이야.
이성계는 이미 늙어서 사리분별 못하는 상황이라 정도전이 아부 떨며 달래면 "OK! OK! 삼봉(정도전 호)<★> 최고!" 하는 상황이야.
이방원은 이성계의 5번째 아들이었지만, 첫째는 이미 조선이 싫어 왕이 되기를 거부하는 상황이었고 나머지 형들도 그닥 왕이 될 재목이 아니었어.
게다가 이방원은 정몽주를 때려죽이는 등 조선 건국에 1등 공신이었거든.
그러니 자신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될 것이라는 야심을 품고 있었지.
이런 상황에서 정도전이 앞으로 조선은 재상중심의 정치니 뭐니 하면서 왕권을 약화시키겠다는 소리를 들으면 빡이 도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
정도전이 자신의 권한을 빼앗겠다는데 그걸 좋게 볼 리가 없지...
반대로 정도전 입장에서는 재상중심정치를 하려면 이방원처럼 독재적이고 강력한 왕이 등극해서는 절대 안되는거야.
힘이 약한 왕이 나와야 재상에게 많은 권한이 돌아가서 그가 꿈꾸는 세상이 오는 거지.
이렇게 되어 조선 초기에 앞으로 이 나라의 모양새를 결정짓는 큰 싸움이 벌어져.
'정도전 VS 이방원'의 대결구도야.
처음에는 정도전이 남은과 결탁하여 이방원을 공신목록에서 제외하고, 그의 이복동생인 이방석을 세자로 등극시키는 등 결국 정도전의 승리로 끝이 날 것 같았지만...
몰래 키운 군사를 갑자기 동원하여 무력을 앞세운 이방원이 정도전을 체포해서 그 자리에서 죽이고, 게다가 자신의 이복동생인 세자 이방석까지 살해하지.(1차 왕자의 난, 1398)<★★★★>
cf)
정도전 : 민본적 통치규범과 재상중심정치를 지향하는 동시에 요동정벌을 주장함.<★>
그리고 조선경국전<★★>, 경제문감(경제육전 아니다. 육전은 조준이 만듬. 명칭 잘 기억해둬), 불씨잡변<★★>을 편찬하여 불교를 철저하게 배척했으며, 주례를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중요하게 여김.
근정전 등 경복궁의 각종의 전각의 이름을 지음.<★>
다시 돌아와서!
이방원은 신하들이 재상중심의 정치니 뭐니 떠들지 못하도록 왕권강화에 모든 기력을 집중해.
결국 아버지인 이성계를 왕에서 물러나게 하고, 자신의 둘째 형인 정종을 왕에 추대한단다.
하지만 이때 모든 군권과 실권은 이방원이 쥐고 있어서 정종은 그저 허수아비일 뿐이었어.
그리고 때가 되자 이방원은 자신에게 반대하는 형들을 유배시키고(2차 왕자의 난<★>) 왕의 자리를 물려받아.
2. 태종
위에서 말한대로 조선의 세 번째 왕으로 등극한 태종 이방원은 한양으로 다시 천도하여 강력한 왕권 중심의 나라를 만들고자 일을 시작하지.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뭘까?
바로 신하들의 힘을 빼앗아버리는 거야.
신하들의 병력. 즉 사병을 혁파해.(이게 사실 정종 때부터 태종 이방원의 주도로 이루어졌음) 이제 그 어느 누구도 사사로이 군대를 거느릴 수 없어.
또한 그들의 사병들을 다 해산시켜서 국가로 귀속시키고, 또한 노비변정도감을 설치하여 사병이 될 가능성이 있는 많은 노비들을 해방한단다.
누군가와 비슷하지? 광종의 노비안검법! 공민왕의 전민변정도감!
모두 왕권강화와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돼.
그리고 6조 직계제를 만들어.
6조(형조,공조,예조 등)에서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왕에게 직접 보고를 하는 거야.
의정부가 뭐냐면 모든 관리들을 통솔하고 조선의 정사를 총괄하는 최고의 행정기관이야.
지금의 국무총리실이나 마찬가지!
다음 시간에 설명해줄게.
원래는 6조가 행정을 집행하고 의정부에 보고를 해.
아래 그림처럼 업무 보고를 받은 의정부는 웬만하면 알아서 처리하고, 그 중에서 꼭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을 뽑아내서 왕에게 보고하거든.
중간에 이 의정부 역할을 삭제해버린 거야;
왕이 정승들의 권한과 일까지 자신이 다 맡아서 해버리는 거지.
태종과 6조 판서들끼리만 알아서하니까 정승들이 할 일이 거의 없는겨ㅋㅋㅋ
왕권은 강해지는 반면, 의정부의 정승들의 존재가치가 점점 사라져 가.<★>
그들의 파워가 약해진다는 거지.
이렇게 해서 태종 이방원은 자신을 견제할 수 있는 2인자 기관을 눌러버린단다.
그리고 사간원을 독립시켜.<★★★★>
원래 사간원은 고려 중서문하성의 낭사랑 같은 곳인데, 고려 때부터 주로 왕권을 견제하는 곳이었어.
낭사가 뭐야? 어사대와 함께 대간을 형성하여 왕의 과오가 있으면 간언하고 봉박하는 기구잖아.
하지만 이를 독립을 시켜서 이제는 신하를 견제하는 곳으로 이용을 함 ㅎㄷㄷ
신하들은 태종의 강력한 카리스마에 꼼짝할 수가 없었지;
또한 의금부를 만들고 승정원을 재설치하여 왕권 업그레이드 팍팍!(다음 시간에 설명)
게다가 창덕궁을 지어서 백성들에게 왕실의 위엄을 보여줬어.
이방원이 얼마나 왕권강화에 집착을 했냐면, 역사적으로 외척이 왕권 약화하는데 가장 큰 위험요소라고 했잖아?
이방원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어. 그리고 외척을 무척 두려워했지.
그래서 자신의 처남들 있지? 자기 부인의 남동생들... 싹 다 죽임 ㅡ.ㅡ
게다가 자신이 죽으면 사돈, 즉 세종의 장인이 힘이 커질까봐 역모죄를 덮어 씌워서 죽여 버려 ㄷㄷ
이처럼 왕권강화를 위한 정책 뿐만 아니라 태종은 양전사업과 호패법<★★>을 실시했다는 것도 기억해.
양전사업은 세금을 제대로 확보하기 위해 지금 현재 토지가 어떤 꼬라지인지 조사하는 제도이고, 호패법은 지금의 주민등록증이라고 보면 돼.
이제 나라가 백성들을 제대로 관리하기 시작한 거지.
또한 신문고를 설치해서 백성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다는 것도 기억해!
사실 태조는 그냥 나라만 건국했을 뿐.... 이렇게 조선의 기틀을 세운 것은 바로 태종이야.
이런 태종의 무시무시하고 피비린내 나는 활약이 있었기에 왕권이 극대화 됐고, 그 다음 왕인 세종이 신하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모든 일을 추진력 있게 시행하여 태평성대를 이룩할 수 있었지.
3. 세종
백성들을 굽어 살피는 깨우친 임금 세세세세세세종이오~
세종은 의정부 서사제를 운영했어.
태종 때는 6조 직계제였지? 하지만 이제는 6조의 일을 의정부를 통해서 오게 한 거야.
현명한 재상에게 일을 맡겨서 의정부 권한을 강화시킨 거지(재상중심정치).
태종에 비해 정승들에게 많은 권한을 분배하였지만, 인사·형사·군사에 관한 권한은 왕이 그대로 갖고 있었단다.
또한 집현전을 창설 및 확대하여 제도·문물·역사에 대한 연구와 편찬 사업을 전개하며, 인재를 양성하고, 훈민정음을 창제<★★★>하였으며 과학기술발전에도 힘을 썼어.
그리고 집현전에서 경연을 열어서 신하들과 대화를 많이 나눴지.
태종 때는 경연은 무슨...
앞에만 서도 신하들이 벌벌 떨었는데ㅋㅋ
반면 세종과는 자유롭게 대화를 나눈 거야.
독재적인 모습이 많이 없어졌지?
태종 덕분에 이제 왕권이 안정화 되었으니 이제 신권과 조화를 추구한 것이야.
신하들에게 발언권을 주기 시작하면 좀 기어오르는 단점이 있기는 하나, 많은 의견이 오고 가기 때문에 생각이 공유되어 정치수준이 발달해.
하지만 세종에게는 부드러운 모습만 있는 게 아니었어.
4군 6진을 개척(김종서)했고<★★★>, 쓰시마섬(대마도, 이종무)을 정벌하는 등으로 영토 확장을 했단다.
이때 부터 현재와 같이 압록강~두만강 경계선이 정해져.
<세종때의 경계선>
4. 세조
세종이 죽고 난 후 첫째아들인 문종이 즉위했는데, 그는 몸이 너무 약해 금방 죽어.
그래서 문종의 어린 아들인 단종이 즉위를 해.
여기서 조선에 문제가 발생!
단종은 너무 어려서 힘이 없는 거야...
어린 왕이 등극하면 어찌되겠어? 왕권이 급격히 추락하는 거지.
세계적으로 역사를 살펴보면 나라가 망할 때의 결정적인 이유는 어린 왕의 등극이 참으로 많았어.
이때 조선의 실세가 되어 단종을 쥐락펴락하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북방의 호랑이로 유명한 김종서야(재상중심정치. 황표정사).
세종 때 6진 개척에 앞장섰던 전쟁 영웅 김종서!
그동안 변방을 지키다가 중앙 조정에 진출을 한 거지.
이때 김종서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냐면, 조선이 망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 정도였어.
아직도 많은 논란이 있는 부분이야. 김종서에게 왕위 찬탈의 야심이 있었다 없었다...
어찌됐든 어린 단종 때문에 왕권이 바닥에 있는 시점에서 한명회, 권람 등의 측근들과 함께 계유정난(1453)<★★★>을 일으켜 김종서를 죽이고 단종을 폐위시켜 왕이 된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수양대군인 세조야. 세종의 둘째 아들이고, 문종의 동생이자, 단종의 삼촌이지.
세조는 추락한 왕권을 다시 일으키고자 집중을 해.
"감히 왕과 논쟁하려고?"
집현전과 경연을 폐지해버려.
"의정부가 뭐야? 먹는 거임? 넌 꺼지고 6조는 곧바로 나한테 보고하라~"
다시 6조 직계제 부활.<★>
"아놔. 나 죽으면 또 왕권 하락하는 거 아냐?! 이거 걱정돼서 죽을 수가 있나. 안되겠다. 내가 애매한 것들 싹 다 바로잡아 정확한 법칙을 만들어서 후대에 그대로 따르게 해야지."
이렇게 걱정하던 세조는 육전상정소를 설치하여 조선의 헌법인 경국대전과 동국통감 편찬을 시작해.
세조는 진관체제와 보법<★>(둘 다 나중에 설명)을 실시하는 등 국방에 힘을 기울이고, 태종처럼 많은 사람들을 귀양 보내고 죽이면서 다시 왕권을 강화시켜.
5. 성종
세조 다음 왕인 예종은 등극하자마자 승하하여 별로 업적이 없어;
예종의 조카이자, 세조의 손자 성종은 증조할아버지 세종과 마찬가지로 독재자의 모습을 많이 없앴어.
집현전을 뜯어고친 홍문관을 설치하여 경연과 서연을 열었단다.<★★★★>
그리고 국조오례의를 편찬<★>했으며, 할아버지 세조가 추진했던 경국대전과 동국통감 편찬 사업을 완수하고 반포하지.<★★★★★★>
게다가 창경궁을 지었다는 것을 기억!
사림파가 중앙으로 들어올 때가 바로 성종시기야.
계유정난으로 막대한 부와 권력을 쟁취한 한명회나 홍윤성 같은 훈구파의 힘이 나날이 커지고 있었거든.
성종이 이런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김종직 같은 사림파들을 중용한 게지.
여기까지가 조선 초기 15세기 말까지의 모습이란다.
● 태조 : 조선 건국. 한양으로 천도. 경복궁 건설. 농본억상·숭유억불·사대교린. 정도전(재상정치. 요동정벌. 조선경국전. 경제문감. 불씨잡변. 주례중시). 정도전 VS 이방원. 이방원 승리(제1차왕자의난). 제2차왕자의난을 거쳐서 태종 등극
● 정종 : 도평의사사 축소하고 의정부와 삼군부 정비. 승정원 설치. 개경천도.
● 태종 : 왕권강화. 한양천도. 사병혁파. 노비해방(노비변정도감). 6조직계제. 사간원독립. 의금부와 승정원 설치. 창덕궁 건설. 사원토지 몰수. 호패법. 양전사업. 신문고 설치.
● 세종 : 의정부서사제. 왕권신권조화(인사·형사·군사 권한은 왕이 그대로). 집현전. 훈민정음(양반중심사회유지목적. 석보상절,용비어천가,월인천강지곡. 훈몽자회,훈민정음운해,고금석림,언문지). 경연. 4군6진개척. 대마도정벌.
● 세조 :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은 뒤 단종을 폐하고 왕위 등극. 왕권강화. 집현전과 경연 폐지. 6조직계제. 육전상전소(경국대전과 동국통감 편찬 시작). 진관체제. 보법. 직전법
● 성종 : 홍문관 설치. 경연·서연. 국조오례의. 경국대전과 동국통감 완성. 창경궁 건축. 사림파 등용
- O·X 퀴즈 -
1.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하자, 우왕은 이성계 장군에게 명나라 정벌을 명했다.
2. 정도전은 재상 중심 정치를 지향했다.
3. 태종은 호패법을 실시하였다.
4. 태종은 6조 직계제를 운영하였다.
5. 태종은 창덕궁을 지었다.
6. 세종은 신문고를 설치하였다.
7. 세종은 4군 6진을 개척하였다.
8. 세조는 의정부서사제를 운영하였다.
9. 세조 때 경국대전이 완성되었다.
10. 성종은 홍문관을 설치하였다.
정답 : OOOOO XOXXO
해설 :
6. 태종이 설치했다.
8. 세조는 6조 직계제를 부활시켰다.
9. 세조 때 편찬을 시작해서 성종 때 완성되었다.
기출문제 풀고 마무리 하자.
평소에 사극을 좀 봤거나, 위에 한명회라는 인물을 캐치했으면 바로 맞출 수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면 좀 추리를 해야 할거야.
맨 아래 연려실기술 단종조라고 나오네.
단종 때 라는 것을 우선 전제로 깔고,
한명회가 (가)에게 변고가 있을 때를 대비하여 무사들과 결탁을 하라고 하네.
(가)는 누굴까?
수양대군, 즉 세조라는 것을 알 수 있지?
1번 : 계유정난을 통해 정권을 장악. 세조 ㅇㅋ. 정답!
2번 : 불씨잡변은 정도전.
3번 : 나중에 배우게 될 숙종에 대한 설명.
4번 :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은 태종이지.
5번 : 삼군부 부활은 나중에 배우게 될 흥선대원군.
정답 : 1번.
(가)는 위화도 회군에 관한 것이고, (나)는 이성계가 왕이 되는 순간이네.
1번. 녹읍 폐지는 통일신라.
2번. 과전법 제정 정답.
3번. 양지아문은 대한제국.
4번. 역분전은 고려.
5번. 직전법은 세조.
정답 2번.
정도전이 참형을 당했다네.
왕자의 난이지.
정답 2번.
4군을 설치했다는 것을 보니, 이 왕은 세종이지?
1번. 효종에 관한 내용.
2번. 장용영은 정조.
3번. 강홍립 부대는 광해군.
4번. 통신사 파견은 광해군.
5번. 계해약조는 세종. 정답!
정답 5번.
순서 묻는 문제다.
위화도 회군 -> 과전법 -> 경복궁이지.
정답 2번.
삼봉집이래.
정도전에 대한 설명 골라보자.
1번. 계유정난은 세조가 일으킨 것.
2번. 신숙주에 대한 설명.
3번. 기축봉사는 송시열.
4번. 성학십도는 이황.
5번. 조선경국전은 정도전 정답.
정답 5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