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대외관계
고려의 대외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고려는 쉴 새 없이 외세의 침략을 받아 전쟁으로 시달리던 국가야.
백성들이 죽어나던 시기였지.
하지만 그 많은 전쟁을 겪고도 정복되지 않은 대단한 국가란다.
10세기부터 알아보자~
I. 거란 (10~11세기)
고려가 건국될 때부터 거란족이 문제였어.
왕건이 만부교사건(거란이 선물한 낙타를 굶겨서 죽여버림)<★★>을 일으킬 정도로 고려와 거란의 사이가 매우 나빴고, 3대 왕인 정종은 광군(사) 30만명을 양성하여 청천강 유역에 배치하며 거란을 매우 경계했단다.<★★★★★★★★>
아니나 다를까... 10세기~ 11세기에 거란족이 쳐들어와!
당시 거란족은 동북아시아 최고 강자로 떠오르고 있었어.
그래서 그들은 송나라를 쳐서 중국을 지배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했었거든.
근데 고려가 송나라랑 친하네?
송나라랑 싸우고 있는데 고려가 뒤통수를 치면 곤란해지겠지?
그래서 우선 고려를 밟아버리고 송나라를 치겠다는 결심을 해.
993년(성종) 거란족 80만 대군이 고려로 몰려오자...
고려에서는 크게 의견이 항복합시다, 싸웁시다로 나뉘는데...
거기서 싸우자는 편에 있던 서희라는 인물이 거란족 장군 소손녕을 만나서 외교로 담판을 지어.<★★>
소손녕 : 야 니네 신라. 왜 고구려 땅 갖고 있냐? 어서 내놔라. 경주로 꺼지면 목숨은 살려주마.
서희 : 푸하하 너 글씨 못 읽냐? 우리 고려임. 고구려 고려 고구려 고려....우리 신라 아니라 고구려 계승국가거든? 알간?
소손녕 : 시나리오 쓰고 있네. 까불지 말고 내놔!
서희 : 야 솔직히 너네 송나라 치려고 하는 거지? 우리가 배후를 공격할까봐 걱정하는 거고.
소손녕 : ...........
서희 : 걱정마라. 공격 안할게. 대신 우리가 강동 6주 먹는다. 원래 우리 땅이었어. 그럼 너 맘 놓고 송나라 두들겨 패도록 우린 잠자코 있을게. 약소~옥!
소손녕 : 흠..... 알았다 콜!
서희 : 그럼 잘가.
이렇게 거란은 강동 6주를 고려 땅으로 인정하고 물러나.<★★★>
이때부터 고려는 압록강으로 진출!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010년(현종) 2차 침략이 발생하지.
생각해보니 거란 입장에서는 군사적 요충지인 강동 6주가 너무 탐나는 거야.
그리고 여전히 송나라랑 친하게 지내는 고려가 꼴 뵈기 싫었고.
이런 상황에서 때마침 고려에서 큰 내분이 일어난단다.
강조라는 인물이 군사 쿠테타를 일으켜 개경에 들어와 김치양 일파를 제거하면서 당시 왕 목종을 폐위시키고, 현종을 옹립하거든.(1009)<★★★★★>
거란이 이걸 구실로 강조를 처벌하겠다면서 또 대군을 몰고 침략해. 아니 지네가 뭔데ㅋㅋㅋ
어이없는 내정간섭을 이유로 거란(요나라) 임금이 직접 40만 대군을 끌고 와서 강동 6주를 빼앗으려고 했어.
하지만 양규장군이 멋지게 수비해 내지!
하는 수 없이 거란족은 양규장군을 피하여 우회해서 고려를 공격하고, 이에 성들이 차례로 함락되기 시작해.
결국 개경까지 탈탈 털리고...
현종은 전라도 나주까지 피신<★>을 하는 수모를 겪어.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거란족 역시 오랜 전쟁과 무리한 속도를 내서 개경까지 왔기에 지칠 대로 지쳐있었단다.
게다가 양규 장군이 흥화진(의주, 압록강 쪽) 전투에서 보급로를 차단해버려.<★★>
이런 상황에서 마침 현종이 "사대관계를 맺을 테니 돌아가십쇼 형님~" 하는 거야.
이에 거란은 현종의 친조(왕이 직접 와서 문안 인사를 함)를 조건으로 승낙을 하고 군대를 철수하지.
하지만 훼이크다 이새꺄.
거란은 철수 과정에서 양규 장군한테 엄청나게 두들겨 맞아.
그 과정에서 비록 양규장군이 전사했지만 고려는 다시 강동 6주를 수복해.
거란은 개경까지 함락하고도 별다른 수확 없이 다시 지들 땅으로 돌아가지.
빡친 거란은 그 후에도 강동 6주 내놓으라고 끊임없이 압박을 가해왔는데, 현종은 이를 쿨하게 무시.
그리고 고려의 국력을 빠르게 회복시키지.
화가 난 거란은 1018년(현종) 소배압 장군이 이끄는 10만 대군을 보내어 3차 침략을 하는데...
이때 고려의 강감찬 장군이 아주 치명타 카운터 죽빵을 갈겨버린 거야.
그게 바로 귀주대첩(1019)<★★>이야.
강감찬 장군은 먼저 양규 장군과 마찬가지로 흥화진 전투에서 쨉을 한대 날리고, 귀주에서 울트라 로켓 펀치를 꽂아주지.
회복 불능 수준의 타격을 받은 거란은 동북아시아의 강자라는 타이틀을 빼앗겨.
그들은 고려한테 심각하게 두들겨 맞은 이후로 싸울 힘도 없어 우리랑 화친을 맺고 북쪽에서 걍 조용히 살게 돼.
여기까지가 거란 3차 전쟁이야.
그 후 고려는 강감찬의 요청에 따라 왕가도의 주도 하에 개경 주위를 빙 두르는 나성을 짓고, 북쪽 오랑캐의 침략에 대비하여 천리장성(덕종 때 시작하여 정종 때 완성)을 쌓는단다.<★★★★>
당나라를 대비하여 천리장성을 쌓았던 고구려의 축조기술까지 계승한 것이라고 보면 돼.
-10~11세기(거란침입)-
● 만부교 사건, 광군사(정종) 등으로 거란과 사이가 안좋았음.
● 거란족 1차 침입(993. 성종) : 서희가 거란족 장군 소손녕과 외교담판. 강동6주 획득
● 강조의 군사쿠테타 : 왕 목종 폐위. 현종 옹립(1009). 거란족의 2차 침입 구실
● 거란족 2차 침입(1010. 현종) : 개경함락되고, 현종은 나주까지 피신. 양규 장군 수비
● 거란족 3차 침입(1018. 현종) :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승리
● 거란족 침입 후 개경주위에 나성 짓고, 천리장성 축조(덕종~정종)
II. 여진(12세기)
거란을 물리치고 태평성대가 이루어지는가 싶더니....
다음 12세기는 여진족이 쳐들어와.
쉴 틈을 안 준다 진짜...(1104. 숙종)
1차 전투에서 고려군(보병)이 여진족의 기병에게 패배를 해.
그래서 고려의 윤관 장군은 여진의 기병을 대항하기 위하여 별무반(기병대(신기) + 보병대(신보) + 승려병(항마))을 조직한단다.(1104)<★★★★★★★>
고려의 통치체제 파트에서 특수군에 별무반과 삼별초가 있다고 했잖아.
얘네가 바로 걔네야~
2차 전쟁에서는 윤관 장군이 이끄는 별무반이 승리를 하여 동북쪽을 빼앗고 동북9성을 세워.(1107. 예종)<★★★★★>
하지만 동북 9성이 전쟁지역이다 보니까 백성들도 옮겨 살기를 꺼려했고,
고려에서 동북 9성에 관리비용이 계속 들어가니 골칫덩어리가 된 거야.
그런 상황에서 여진족이 '고려형. 우리가 조공도 바치고 잘할 테니 동북 9성 주라~' 이러는 거지. 그래서 결국 줘.(1109)<★★>
근데 엄청난 일이 생겨!
동북 9성 구걸하면서 찌질댔던 여진족이 요나라(거란족)를 두들겨 패버리고 송나라까지 발라버린 후에 중국을 차지한 거야.(송은 아래로 쫓겨 내려가 남송이 됨)
그리고 중국 중앙에 금나라를 세우고(1115) 우리에게 군신관계를 요구하지.
이때 고려는 금나라의 기세에 싸울 생각도 못하고 금나라 국방력에 쫄아서 군신관계를 받아들여.(1126)<★>
이 때 사대관계에 앞장서서 찬성했던 사람이 이자겸<★>과 김부식이야. 문벌귀족들이지.
이에 반발한 것이 서경천도운동이고.
저번 시간에 배웠던 내용이니 잊으면 안 돼!
굴욕적이긴 하지만 금과의 군신관계의 대가로 우리 고려는 전쟁 없이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해.
● 여진족 침입(1104. 숙종) : 12세기. 윤관장군-별무반(기병대+보병대+승려병)승리. 동북9성 축조(1107. 예종).
● 여진족이 금나라를 세우고 군신관계 요구. 이를 받아 들임(이자겸과 김부식 찬성. 1126)
III. 몽고 (13세기)
1. 몽고의 침입
13세기!
징키스칸이라는 불가사의한 인물이 등장한 몽고군이 세계를 제패하고 중국에 원나라를 세워.
그리고 몽고 놈들이 역시 우리 고려도 가만히 두질 않고 쳐들어오지.
원래는 강동성 전투(1219. 강동성의 역. 김취려)<★>에서 몽골·동진과 함께 연합하여 거란을 무찌르고 여몽협약을 맺을 정도로 사이가 그닥 험악하지 않았어.
하지만 이 몽고놈들이 지나친 공물을 요구하였고, 그러다 고려에 왔던 몽골 사신 저고여가 피살(1225)<★★>되면서 전운이 돌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마침내 6차에 걸친 전쟁이 시작되지.(1231~1270)
1차 침략(1231. 고종) 때는 몽골 총사령관 살리타가 쳐들어와.
여기에 맞서 귀주성에서 박서 장군이 맞서 싸워 결국 지켜내!<★>
(귀주 나온다고 무조건 강감찬의 귀주대첩 고르면 안돼. 박서 장군 이름 기억해둬.)
그리고 충주성에서 노군과 잡류별초가 몽골군에게 승리를 거두지.
하지만 고려 조정은 전쟁이 오래되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을 염려하여 항복을 해버려.
그래서 고려는 몽골이 요구한 강화를 수락하고 고려에 다루가치(몽골의 관리)가 파견된단다.
근데 이 다루가치 쉐키들의 내정간섭이 하늘을 찌른단 말이지?
빡친 고려는 강화도로 천도하여 항전의 뜻을 밝혀.(1232. 고종(최우 정권))<★★★>
이에 몽골은 곧바로 보복하러 2차 침략을 하지.(1232)
근데 고려 조정만 강화도로 안전하게 피신을 하고, 백성들은 걍 육지에 버리고 온 거야;
어쩌겠어?
몽골놈들이 고려인들을 겁나게 도륙하는거지ㅠ
백성들은 알아서 항전을 해야 돼.
근데 여기서 엄청난 일이 생겨!!!
스님인 김윤후 장군과 부곡민이 합심하여 처인성(현재의 용인) 전투에서 승리를 하고, 몽고 2인자 격인 총사령관 살리타를 전사시켜!!!<★★>
고려의 정예병도 아니고 의병들이 말이야!!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거지;
잠시 몽고와의 전쟁이 중단될 정도로 세계를 정복한 몽고족에게는 큰 충격이었어.
게다가 김윤후 장군은 5차 침략(1253. 고종) 때 충주성에서 노비들과 특수행정구역 주민들이 주도하여 전투에서 또 한번의 대승리를 거뒀단다.
cf)
원래는 원나라는 고려를 복속시켜 역사 속에서 지워버리려고 했는데,
이렇게 고려가 쉽게 무너지지 않자....
30년 동안의 끈질긴 저항에 혀를 내두르고 고려에게 복속이 아닌 군신관계를 요구해.
원나라도 고려랑만 싸우면서 국력을 낭비할 수는 없고, 남송과 계속해서 싸워야 했거든.
또한 원나라 내부에서 제위 계승 다툼으로 전쟁 상황이 어려워져만 가는 거야.
결국 원나라가 고려에게 군신관계를 요구하고, 고려가 요구한 6가지 조건을 원나라 세조가 다 받아들여.
이를 '세조구제'라고 해.
그리고 고려 조정은 무신정권을 끝내고 강화도에서 다시 개경으로 돌아온단다.(1270. 원종)
여기서 잠깐!
삼별초의 항쟁(1270~1273)을 알아둬.
고려 조정이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를 한 후에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가 환도에 반대하며 우리는 끝까지 항복하지 않겠다면서 왕족 '승화후 온'을 왕으로 한 반몽 정권을 세우고 강화도에서 진도로... 그리고 제주도까지 내려가서 끝까지 항쟁했다는 것도 기억해.<★★★★★★>
결국에는 고려와 몽골군의 연합군에 의해 제주도가 함락되면서 3년 만에 진압되었지만...
-13세기(몽고침입)-
● 강동성전투. 여몽협약. 저고여 피살.
● 1차 침략(1231. 고종(최우 정권))(박서 장군). 충주성 전투(노군과 잡류별초).
2차 침략(1232. 고종) : 다루가치 내정간섭이 심각하자 강화도로 천도하여 저항. 김윤후장군+부곡민의 합심으로 처인성 전투 승리. 초조대장경 소실.
3차 침략(1235. 고종) : 황룡사 9층 목탑 소실. 팔만대장경.
4차 침략(1247. 고종)
5차 침략(1253. 고종) : 충주성 전투 승리.
6차 침략(1254. 고종) : 충주 다인철소 전투 승리.
● 원나라가 고려에 요구한 군신관계 받아들임(세조구제. 개경환도. 1270. 원종). 배중손 삼별초 항쟁(강화도→진도→제주도. 1270~1273)
2. 원간섭기
(1) 원나라의 내정간섭
이제는 원간섭기야.
말이 군신관계지, 이것은 무슨 식민지 수준으로 엄청난 내정간섭을 받았어.
우선 영토가 축소됐어.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고려가 몽골의 직할지로 편입된 것이 아니라 단지 직속령이 설치된 것이야.
총관부를 설치하면서 그 지역을 원나라가 직접 다스린 거야.
지도에서 그 위치와 명칭을 잘 기억해둬.
우리 고려가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면서 관제개편도 당해.
부마국이 뭐냐면 사위의 나라야.
고려왕이 원나라 황제의 딸과 혼인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서열은 원나라보다 낮아지는 거지.
그래서 이 당시에는 태조 세종처럼 조,종을 붙이지 못하는 동시에 앞에 충성을 의미하는 충을 붙여가지고, 충렬왕, 충선왕, 충X왕 해야 했어.
또한 폐하를 전하로, 태자를 세자로 한 단계 아래로 부르게 됐단다.
게다가 2성은 첨의부<★★>, 6부는 4사, 중추원은 밀직사, 어사대는 감찰사로 축소됐지.
그만큼 권한도 줄어든 거야.
다만 도병마사는 도평의사사로 명칭이 바뀌었으나 관제가 격하되지 않고, 오히려 권한이 확대되고 상설화 되었다는 것을 기억!(충렬왕)<★★★>
그리고 고려땅에 식민통치를 책임지는 민정담당자 다루가치를 설치해.
또한 매사냥을 관리하는 응방이 생기는데, 본래 목적과 달리 이 기관에서도 내정간섭을 심하게 했단다.
게다가 일본정벌을 위해 정동행성<★★>, 그리고 고려·원나라와 관련된 범죄단속을 하는 이문소(정동행성의 부속 기관)<★>가 세워져서 군사권과 사법권에 큰 간섭을 받아ㅠㅠ(충렬왕)
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참견이지?
아오 이 몽고자식들 진짜.... 치가 떨린다.
사회에서도 변화가 생기는데 몽골풍이 유행해.
막 사람들이 변발을 하고 호복을 입고 다녀.<★★>
이게 멋있나?ㅋㅋ
그리고 몽고식 언어도 생겨. XX치,XXX치.... 양아치, 벼슬아치 등
반대로 우리도 몽고에게 문화를 퍼뜨리긴 해. 이를 고려양이라고 해.
몽골풍과 고려양!
또... 결혼도감이 설치되어 우리 여자들이 몽고에 팔려갔어. 아니 끌려간 거지.
이들을 공녀라고 불렀어.
네 여자친구나 여동생 누나가 다른 나라로 끌려가서 다시는 못 본다고 생각해봐.
피가 끓지?
그래서 대릴사위제(예서제)와 조혼을 하는 풍습이 생겼단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서 애를 낳아서 공녀로 끌려가지 않는 거지.
이뿐만 아니라 인삼, 매, 금, 은 할 것 없이 다 털어가;
우리 조상님들 디게 힘들었겠지? ㅠㅠ
에휴...
(2) 권문세족
이런 나쁜 몽고 놈들한테 샤바샤바 굽신굽신 하면서 큰 세력이 있었어.
미친놈들...
바로 권문세족이야. 친원파지.
원나라를 등에 업고, 도평의사사와 정방 등의 주요기관들을 장악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어.
가문의 권위를 내세우는 문벌귀족과는 달리 현실적인 관직을 통하여 정치권력을 행사했단다.
역시나 음서제를 통해 조정의 요직을 장악했고, 사패전(왕이 개간을 목적으로 임의로 주는 토지) 등을 통하여 대농장을 세우면서 백성들을 노비로 만들고 수탈하며 경제력을 키웠어.
나라꼴이 어땠는지 상상이 가지?
(3) 원나라 세력 축출
자! 이제 분노를 좀 가라앉히렴.
이렇게 우리를 괴롭혔던 원나라 몽고 놈들도 시간이 갈수록 힘이 다해 점점 무너지기 시작해.
그에 따라 고려에게 뻗쳤던 영향력도 크게 줄어든단다.
이 틈을 타서 충선왕은 권문세족의 소굴인 정방을 폐지(그 후 다시 생김. 폐지됐다 부활했다하다가 창왕 때 완전 폐지)<★★>하고, 사림원을 설치하여 개혁을 실시해.(하지만 조비무고사건으로 실패)
또한 의염창을 설치하고 소금전매제(각염법 시행. 국가가 독점권을 가짐. 경제파트에서 계속 설명)를 실시하여 권문세족과 맞서 싸운단다.
사림원이 폐지된 후로도 고려 왕들은 원나라 세력과 권문세족에 대항하려고 했어.
찰리변위도감(충숙왕), 편민조례추변도감(충혜왕), 정치도감(충목왕)이 설치되어 개혁을 시도했고, 충목왕은 응방을 폐지했단다.
이런 시도들이 꾸준히 시도되다가 결국 고려가 승기를 잡기 시작해.
공민왕은 기철을 비롯한 부원 세력을 숙청하고 우리 고려에 침투해 있는 원나라 세력을 뽑아내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했어.<★>
공민왕은 매우매우매우 중요하니 자세히 공부하자.
1. 정동행성 이문소, 첨의부, 정방을 폐지(1352)했어.<★★★> 군사력과 인사권을 왕이 다시 회수했다는 뜻이야.
2. 당시 탐라총관부와 동녕부는 이미 충렬왕 때 회복을 했었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수복해.(1356)<★★★>
철령이북까지 영토를 확장한 게야.
<경계선 암기>
3. 몽골풍을 금지했어<★>. 문화적인 청소도 완수!
4. 원나라의 세력도 약화된데다가 공민왕에게 권문세족 수장인 기철(원나라 기황후의 오빠)이 숙청되면서(1356)<★★>, 권문세족의 세력이 약화되기 시작해.
하지만 이 망할 놈들이 가만히 있을세라...
공민왕이 흥왕사에서 잠시 머무른 적이 있는데, 이때 친원파 김용이라는 놈이 공민왕을 시해하려고 해.
이를 흥왕사의 변(1363)이라고 하는데, 이때부터 공민왕은 본격적으로 권문세족을 조지기 시작하지.
공민왕은 우선 그들의 탄탄한 경제력을 끊어버리기 위해 사원세력 신돈을 등용해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고 판사로 임명하여 권문세족들에게 부당하게 빼앗긴 토지를 백성들에게 돌려주고, 불법적으로 노비가 된 자들을 해방시킨단다.(1366)<★★★★★★>
어떤 상황이었냐면 권문세족의 대농장은 주로 노비로 운영이 됐었는데, 이 자식들이 양민을 불법적으로 자신의 노비로 만들었어. 또는 못살게 굴어서 스스로 노비가 되도록 하여서 세금을 내는 양민의 수를 줄이고 지들 배를 불리고 있는 거야. 공민왕이 거기에 치명타를 가한 거지.
광종의 노비안검법과 비교를 해서 알아둬! 왕권강화와 재정확보가 이 둘의 공통점! 기억해야 돼!
5. 이때 왕을 도와서 새롭게 세력을 쟁취하고 있었던 세력을 신진사대부라고 불러.
저번 시간에 말한 대로 지방 향리 출신들이 성리학을 접하면서 새로운 세력이 됐다고 했지? 그들이 바로 얘네야.
신진사대부 힘을 키워주기 위해 과거제를 정비(공민왕 스스로 지공거가 됨)했고, 성균관을 다시 지어서 순수 유교 교육기관으로 개편했어.(1367)
6. 또한 원나라의 연호를 폐지하고<★>, 중서문하성과 상서성 등 1성 4부에서 2성 6부로 관제도 다시 복구했고<★>, 요동지방(동녕부)을 공략(1369)했다는 것을 알아둬.
이렇게 되면서 원나라의 자취가 점점 사라져갔단다.
-원간섭기-
● 영토축소 : 원나라가 쌍성총관부(철령 이북).탐라총관부(제주도).동녕부(서경)를 설치 후 직접 다스림
● 관제격하 : 2성6부→첨의부 4사. 중추원→밀직사. 도병마사→도평의사사(이건 오히려 권한 확대되고 상설화 됨)
● 다루가치 설치 : 식민통치 관리
● 내정간섭 : 응방. 정동행성 이문소
● 몽골풍 유행. 고려양.
● 공녀 : 결혼도감. 고려의 처녀 차출 → 데릴사위제 및 조혼 풍습 생겨남
● 권문세족 성장(친원파) : 음서제로 권력 장악. 대농장. 백성들 수탈.
● 충선왕 : 정방 폐지. 사림원 설치. 소금전매제.
● 충숙왕 : 찰리변위도감
● 충혜왕 : 편민조례추변도감
● 충목왕 : 정치도감 설치. 응방 폐지.
● 공민왕 : 기철 등 부원 세력 축출. 쌍성총관부 무력으로 수복. 정동행성 이문소와 첨의부와 정방 폐지. 몽골풍 금지. 2성 6부로 관제복구. 과거제 정비. 성균관을 순수 유교 교육기관으로 개편. 원나라 연호 폐지. 요동지방 공략.
● 권문세족 힘 약화(흥왕사의 변 이후 공민왕이 전민변정도감 설치(노비안검법과 꼭 비교)). 신진사대부 힘 강화.
V. 홍건적·왜구 (14세기)
원나라 간섭을 받으면서 국력이 취약해졌던 고려는 또!!!!! 외세의 침략을 받아 ㅡ.ㅡ
홍건적이랑 왜구가 끊임없이 괴롭힌 거지.
이게 14세기의 이야기란다.
홍건적은 원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에서 결성된 한족의 반란군이야. 왜구는 원숭이들이고.
왜구 놈들이 이 당시 얼마나 고려를 심각하게 괴롭혔냐면, 원래 경상도 해안에만 출몰하던 이 놈들이 14세기에 전라도 뿐만 아니라 개경 부근까지 나타났어.
그리고 홍건적은 총 두차례 침입(1차-1359, 2차-1361)을 했었는데, 2차 때는 개성이 함락되어 공민왕이 복주(지금의 안동)로 피난을 갈 정도였단다.
하지만 고려가 결국에는 다 발라버리지.
그런 승리 과정에서 성장했던 세력이 바로 신흥무인세력이란다.
최영 장군(1376. 홍산대첩)<★>과 이성계 장군(1380. 황산대첩)이 대표인물이지.
● 외세의 침략 : 홍건적(2차 침략 때 공민왕 복주로 피난), 왜구
● 신흥무인세력 성장 : 최영장군(홍산대첩). 이성계장군(황산대첩)
VI. 명나라(14세기)
결국 원나라는 망하고 명나라가 중국 땅의 주인이 됐어.
근데 문제가 생겨.
우왕 때 명나라 놈들이 고려에 있던 총관부를 대신해서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우기는 거야.
지들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내놓으라고 하는 거지.
이에 빡친 고려왕인 우왕은 한판 붙어보자며 최영 장군에게 요동정벌<★★>을 명해.
그러나 최영 장군 대신 출전했던 이성계 장군이 4대불가론을 주장하면서 위화도에서 회군을 한단다.<★>
칼날을 명나라로부터 고려 왕실로 돌린 거지.
이에 따라 요동정벌은 중단되었고, 명나라도 고려가 의외로 강하게 나오니까 철령위 설치 요구를 철회했어.
자세한 것은 조선 건국 파트에서 설명할게.
여기선 고려 말에 명나라와 이런 신경전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둬!
●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 요구(우왕). 명나라에 맞서 요동정벌과정에서 이성계장군이 위화도에서 회군. 요동정벌 중단.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 요구 철회.
- O·X 퀴즈 -
1. 태조 때 광군사 30만명을 양성하여 청천강 유역에 배치하면서 거란을 매우 경계했다.
2. 성종 때 서희가 외교 담판으로 소손녕의 거란 부대를 물리쳤다.
3. 현종 때 거란의 2차 침입이 있었다.
4. 3차 침입 후 정종 때 천리장성을 쌓기 시작했다.
5. 윤관 장군은 별무반을 조직하여 여진과의 2차 전쟁에서 승리했다.
6. 예종 때 동북 9성을 세웠다.
7. 김윤후 장군과 부곡민이 합심하여 처인성 전투에서 몽골군에게 승리했다.
8. 충렬왕은 사림원을 설치하여 개혁을 실시했다.
9. 공민왕은 탐라총관부를 무력으로 수복했다.
10. 공민왕은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였다.
정답 : XOOXO OOXXO
해설 :
1. 정종 때의 일이다.
4. 덕종 때 쌓기 시작해서 정종 때 완성.
8. 충선왕 때의 일이다.
9.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수복했다.
기출문제!
만부교 사건을 말하고 있네.
(가)는 거란이야.
1번 : 정종은 거란 침입에 대비해서 광군을 창설했지. 정답!
2번 : 화통도감은 왜구들이 난리칠 때 설치된 것.
3번 : 진관체제는 나중에 조선파트에서 배우게 될 거야.
4번 : 훈련도감도 역시 조선파트.
5번 : 삼별초는 거란과 관계가 없죠. 무신집권기 최우가 설치했고, 몽골놈들과 관련이 있지.
정답 : 1번.
노국공주가 부인이래.
공민왕에 대한 설명 골라보자.
1번. 쌍성총관부 수복은 공민왕 정답!
2번. 진포해전은 우왕 때.
3번. 삼별초 조직은 무신정권 때.
4번. 서희 강동 6주 획득은 거란족 침임 때.
5번. 요동 정벌은 우왕 때.
정답 1번.
왕이 즉시 변발을 풀었다는 것을 보아 공민왕이야.
1번. 기철 숙청 정답!
2번. 처인성 전투는 몽고 침입 시기.
3번. 무신정변에 관한 설명.
4번. 9재학당은 문벌귀족 시대인 문종 때.
5번. 만적의 난은 무신정권 때.
정답은 1번.
강감찬의 귀주대첩에 관한 설명이네.
서희의 외교 담판 이후, 별무반 조직 전이지?
정답 2번.
역시 사건 및 기관 설치 순서 묻는 문제.
순서들 잘 기억해.
과거제 시행 -> 정방 설치 -> 정동행성 이문소 설치 -> 전민변정도감 설치
정답은 4번.
소손녕과 서희나오네.
거란에 관한 설명 골라보자.
1번. 동북 9성은 여진.
2번. 개경에 나성은 거란 정답!
3번. 요동정벌은 명나라.
4번. 화통도감은 일본 등.
5번. 쌍성총관부는 원나라.
정답은 2번.
일본 정벌하러 가는데 풍랑 만나 행방을 잃었다네.
원간섭기에 관한 설명을 고르면 되겠지?
1번. 정감록은 조선.
2번. 변발과 호복 정답!
3번. 교정도감은 무신집권기.
4번. 이자겸은 문벌귀족 집권기.
5번. 김사미와 효심은 무신집권기.
최우 정권 때 강화도 천도와 삼별초 활약 시기 사이의 일을 고르면 되겠다.
1번. 정방 폐지는 (나)보다 이후.
2번. 만적의 난은 (가)보다 전.
3번.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은 (가)보다 전.
4번. 무신정변은 (가)보다 전.
5번. 황룡사 구층 목탑 손실은 강화도 천도 후, 삼별초 활약 전. 정답!
정답은 5번.
변발과 호복이 유행하던 시기는 원간섭기야.
1번. 동북 9성은 여진 침입시기.
2번. 권문세족이 도평의사사 장악은 원간섭기 정답!
3번. 무신정변에 대한 설명.
4번. 초조 대장경은 거란 침입 때 제작.
5번. 만적의 난은 무신집권기.
정답은 2번.
여진족이 금나라를 세우고 번성할 때네.
별무반에게 줘 터진 후, 무신정변 전이지?
정답 3번.
개경 환도 결정에 봉기한 것은 삼별초지.
1번. 최씨 무신 정권의 군사적 기반인 것은 야별초. 이 야별초가 삼별초의 기원이 됐지. 정답!
2번. 광군사에 대한 설명.
3번. 별무반에 대한 설명.
4번. 주현군에 대한 설명.
5번. 9서당에 대한 설명.
정답 1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