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대외관계
I. 사대교린
조선의 대외정책을 4글자로 표현하면? 사대교린!
사대정책(자주적 실리 외교)은 선진국인 명나라에게.
교린정책(회유 및 강경)은 여진·일본·류쿠·자바 등 후진국에게.
우선 조선은 명나라와 형제관계를 맺고 시작한 나라야.
원래 고려 때 한판 붙으려고 했는데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면서 전쟁을 피하고 사대외교를 펼쳤지.
조선은 명나라에게 조공을 바치는 대신에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한 거야.
좀 굴욕적이긴 하지만, 고구려 빙의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저 물량 떼거지들을 어떻게 이기겠어ㅡ.ㅡ
하지만 명나라와의 관계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야.
명나라는 태조 때 정도전의 표전문 사건(명에 대한 불손함), 고명·금인(태조를 왕으로 인정 안함), 종계·변무(태조 아버지를 이인임으로 잘못 표기), 여진족 문제(여진인 송환 문제)로 조선에게 딴지를 걸며 매우 귀찮게 했단다.
● 사대교린 : 명나라 - 사대. 여진·일본·류쿠 등 - 교린
● 명과의 대립 : 표전문 사건. 고명·금인. 종계·변무. 여진족 문제
II. 여진족
(4군 6진)
태조 때 여진족을 몰아내고 두만강 지역을 확보해.<★>
그리고 세종 때 4군 6진을 개척해서 사민정책(삼남지방의 일부 백성들을 이주시키는 정책)을 펼쳐.<★★>
이제 4군 6진이 완전히 우리 땅이 된 거야. 하지만 여진족이 언제 또 쳐들어올지 모르잖아.
그래서 우리가 여진족 촌놈들을 살살 달래.
북평관(여진족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한양에 설치한 객관)과 무역소(태종)를 설치<★★★>해서 맛난 것도 주고 진귀한 장난감도 주는 거야 우쭈쭈~
그리고 또한 그 지역의 토관(지방을 다스리는 관리)도 여진족 출신으로 임명해서 여진족의 귀순을 적극적으로 장려했지.
● 4군 6진. 사민정책. 북평관. 무역소. 토관을 여진족으로 임명. 귀순 장려
III. 일본
1. 왜구의 노략질에 대한 대응
남쪽을 보자!
조선 전기의 일본은 자체 생산능력이 부족한 국가였어.
태종 때부터 회유책으로 왜관을 설치<★★★>하여 통상을 해주며 일본놈들 왕래를 허용해줬지만...
원숭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조선과 명나라에 배 타고 와서 노략질을 해대는 거야.
조선도 참을성에 한계가 있지...
참다참다 터져서 결국 일본 해적 소굴을 털어버려.
이게 바로 세종 때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이지.(1419)<★★★★>
그리고 교역을 중단해버린단다.
그러니 일본 원숭이들이 굶어 죽게 생긴 거야. 생산능력이 부족해서 손가락이나 빨아야겠고, 노략질을 하자니 조선한테 두들겨 맞을 테고...
결국 대마도 도주(지방관)가 울며불며 제발 좀 교역해달라고 하는 거야.
불쌍하기도 하고, 또 다른 문제가 터질까 염려되어 세종 때 부산포·제포·염포, 즉 3포를 개방하고(1426), 계해약조를 맺어줘.(1443)<★★★★★★★>
(3포 위치)
약조의 내용을 보면... 세견선은 50척으로 한다, 세사미두는 200석으로 한다,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만 특송선을 파견 한다 등 대마도의 제한적 무역을 허락하는 교역에 관한 조약이야.<★>
이렇게 채찍과 당근을 주면서 여진과 원숭이와 관계를 유지했단다.
그러나 일본 놈들은 근본이 틀려먹은 게 우리가 이렇게 잘해줬는데 우리한테 칼을 들이대;
진짜 나쁜 놈들이지...
이렇게 교역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원숭이들이....
중종 때 쌀과 명주의 교역량이 적은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3포왜란을 일으킴(1510).<★>
괘씸한 왜놈들에게 세견선(25척)과 세사미두(100석) 반토막을 낸 임신약조(1512)를 맺어.
또 사량진왜변을 일으키자, 세사미두를 없애버린 내용인 정미약조(1547)를 맺지.
이렇게 무역이 줄어들자 왜놈들은 명종 때 을묘왜변을 일으켜.(1555)
그리고 빡친 조선은 일본과 국교를 단절해버린단다.
그러다 선조 때인 1592년에 임진왜란이 터지지.
2. 임진왜란
임진왜란을 설명해 줄게.
선조는 일본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보고를 받고, 그들을 살필 목적으로 통신사를 보내.
근데 통신사로 갔던 김성일과 황윤길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한단 말이지...
김성일 : 쫄것 없습니다 전하. 마음 푹 놓고 계시옵소서. 전쟁 안일어납니다~
황윤길 : 전하!! 지금 빨리 전쟁에 대비해야 합니다!! 이놈들 분명 빠른 시일 내에 쳐들어 온다니깐요!!
인간은 믿고 싶은 것을 믿기 마련...
선조는 고민하던 끝에 결국 김성일의 말대로 전쟁 준비를 안하는 것으로 결정해.
하지만... 1592년(일본놈이 오구이따)에 명나라를 치러 갈테니 길을 비키라는 명분을 앞세워 일본놈들이 쳐들어오지.
초반에는 일본 20만 대군이 부산에 상륙을 하면서 조선군은 완전 쳐발려.
물량에서 상대가 안 되는 거야.
첫 전투인 부산성 전투(1592.4.14)는 3800명 VS 18700명이야.
게다가 준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지.
한마디로 걍 자다 일어나서 갑자기 5대 1로 싸운다고 생각해봐 ㅋㅋ 이기는 게 신기하지ㅡ.ㅡ
첨사 정발 장군이 분전했지만, 결국 부산성이 함락...<★>
부산성 전투도 그나마 병력이 모인 것이었고, 대부분 전투가 막 300명 VS 20000명 수준이야.
이건 그냥 방패만 들고 냅다 달려도 밟아서 이기는 수준;
조정에 패전 상소가 막 빗발치고!! 조선도 정신을 차려서 대군을 모아.
신립 장군이 조선군 8만을 이끌고 일본군과 한판 붙으러 충주성으로 내려가지.
여진족과의 전쟁에서 대승의 전적이 있는 신립 장군이라 모두들 일본군을 결국 막아낼 것이라 확신했단다.
하지만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장군의 어처구니 없는 컨트롤로 조선군이 녹아내려 ㅠ(4.28)<★★★★>
(난중잡록에는 8만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근거가 정확하지 않고 기동할 공간도 없을 뿐더러 당시 조선군 상황으로 봤을 때 2만 정도가 아닐 까로 추정됨)
선빵을 크게 후려 때린 일본은 한양까지 시원시원하게 진격을 해.(5.2)
그러나ㅋㅋㅋ
일본 놈들이 '이겼다!!!' 싶었을 때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평양성으로, 그리고 또 의주로 도망을 가ㅋㅋ<★★>
일본 놈들은 당황했지;
왕이 수도를 버리는 것을 상상도 못했거든.
일본 놈들이 예상한 스토리는 기습공격으로 조선에 상륙하여 한양까지 순식간에 점령하여 선조를 사로잡아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요구하려고 했는데... 뭥미?;
어쨌든 이왕 진격한 거 선조를 끝까지 따라가서 잡아야겠지?
평양성까지 함락(6.14)시키면서 북쪽으로 진격하고 있을때, 갑자기 일본 본토에서 보급이 끊겨.
밥이 오지않는 거지. 대군이 상륙을 했는데 죄다 굶어 죽게 생긴 거야.
왜 보급이 끊겼을까?
왜일까?
왜?
.....?
바로!!!!!
치트공 이순신 장군께서 남해바다를 장악하면서 일본 배들을 수장시키잖아ㅋㅋㅋ
조선 최고의...아니지... 세계 최고의 스나이퍼가 남해바다를 조준하고 있으니 도저히 지나갈 수가 없는 거야ㅡ.ㅡ
옥포 해전(5.7)<★>에서 조선은 드디어 첫 승리를 거두고, 사천포 해전에서 거북선이 투입(5.29)되면서 일본군을 당황시키지.
그리고 연전연승하다가 한산도 대첩(7.8)<★★>에서 학익진으로 일본 수군들 대박살ㅋㅋㅋ
여기서부터 전세가 역전이 돼!!!!
게다가 진주에서 김시민<★>이 전라도로 들어가려는 일본군을 학살 수준으로 패버려.(진주대첩<★>. 1차: 1592. 10.5, 2차: 1593.6.20. 결국에는 함락당했지만 막대한 손실을 입은 일본군의 호남진출 좌절. 논개의 희생)
이렇게 되어 일본군은 전의를 상실한단다.
밥이 오지 않자 일본놈들이 현지조달, 즉 민가를 약탈해서 식량을 구하려고 했어.
근데 조선이 뭐야? 양인개병! 농병일치! 조선 남자들 다 예비군이야.
백성들 하나하나가 군인만큼 싸움을 잘한다고...
일본 놈들이 약탈하려고 성을 빠져나오는 순간 의병들이 개털어 버리는 겨ㅋㅋ
(여기서 잠깐! 대활약을 펼친 의병장들 한번 보고 가도록 하자.
경상도에서는 곽재우<★★>와 정인홍. 전라도에서는 고경명<★>과 김천일. 충청도에서는 조헌과 영규. 그리고 서산대사(묘향산), 사명대사(금강산), 정문부(길주)!)
이렇게 돼서 일본군은 도망자가 속출하고, 조선군으로 스스로 찾아가 항복하는 사태가 일어나...
뭐...망한 거지;
또한 명나라에서 원군이 오면서 조선은 평양성을 되찾고(유성룡. 1593.1)<★★>, 행주산성에서 대승리(권율. 1593.2)<★★>하는 등 일본을 뒤지게 패면서 남쪽으로 쭉쭉 퇴각을 시켜.
이렇게 하여 선조는 한성으로 귀환을 했고(1593.10), 조선은 안정을 되찾아.
결국 일본은 휴전을 제의하고 화의교섭을 요청한단다.
근데 일본 놈들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조선의 땅 일부를 내놓으라는 주장을 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완전 도랏멘;
당연히 화의교섭이 결렬되자 경상도에 밀려났던 일본 놈들이 다시 북쪽으로 밀고 쳐올어오는 정유재란을 일으켜.(1597.1)<★>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고 있는 틈을 타 일본군은 원균의 수군에게 칠천량해전(1597.7)에서 대승을 거두는 등 조선을 위협했으나...
결국에는 조·명 연합군이 발라 버려.
게다가 다시 복직한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1597.9)<★★★>과 노량대첩(1598. 11)으로 일본 놈들을 바닷물에 수장...
쳐맞은 일본 놈들은 그때 마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일본으로 철수해.
그리고 전란이 끝이 났단다.
그 후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쟁으로 지친 일본을 수습하고 에도 막부를 열었어. 그러고 나서!
"우리는 히데요시가 강압적으로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전쟁에 참여한 거지 우리는 조선을 좋아해요~ 다시 항구를 개방해주세요 형님들..."
다시 조선에 샤바샤바 부탁을 하여 조선은 포로의 송환 교섭을 위해 사명당(유정)을 일본에 파견하고<★>, 기유약조(1609. 광해군. 세견선 20,세사미두 100. 부산포만 개항함. 서계 지참 의무)가 체결<★★★★★>되어 무역을 재개하며 평화관계가 쭉...지속돼.
3. 피해 수습
징한 일본과의 전쟁이 끝난 후 광해군은 조선을 수습하기 시작해.
양전사업 실시와 호구조사 등으로 오로지 전란으로 피폐해진 백성을 구제하는데 집중을 하지.
강한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겠어? 반대파들을 없애야겠지? 광해군의 반대파 제거 작업이 거침없이 진행돼.
신하들뿐만 아니라 영창대군도 죽이고, 인목대비까지 폐위를 시켜버려.
광해군은 이렇게 얻은 파워로 대동법을 시행하여 백성들의 삶을 정상화 시키면서 조선 후기의 막을 연단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 왜관 설치(태종).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세종). 계해약조(세종. 부산포·제포·염포. 세견선, 특송선 등 무역에 관한 내용)-교역에 관한 조약. 3포왜란(중종. 임신약조). 사량진왜변(중종. 정미약조). 을묘왜변(명종. 국교단절). 임진왜란(선조. 1592)
● 임진왜란 : 통신사보냈으나 잘못판단 → 일본 대군이 부산에 상륙(정발 장군. 부산성 함락) → 일본군이 충주에서 대승(신립 장군 패배)을 거두고 한양까지 쭉쭉 진격 → 선조가 의주로 도망감 → 일본군의 추격 → 이순신 장군이 보급을 끊음(옥포해전, 한산도대첩 등) → 평양성까지 함락시킨 일본군이 현지조달을 하려 했으나 의병(곽재우,정인홍 등)한테 두들겨 맞음 → 명나라 원군 도착 후 일본군 제대로 발리기 시작함(평양성 수복, 행주대첩 등)→ 일본군이 화의를 제의함 → 교섭불발 → 정유재란 → 일본군 쳐맞고 퇴각(명량대첩, 노량대첩) → 종전 후 에도막부가 들어서고 포로송환(사명당) 및 무역을 재개하여 평화관계 유지
● 광해군의 전쟁 피해 수습 : 양전사업. 호구조사.
- O·X 퀴즈 -
1. 정도전의 표전문 사건은 조선과 명 관계에 긴장감을 불러왔다.
2. 태조 때 두만강 지역을 확보했다.
3. 세조 때 일본과 계해약조를 맺었다.
4. 명종 때 3포왜란이 일어난 후 임신약조를 맺었다.
5. 임진왜란 당시 정발 장군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부산성이 함락되었다.
6. 사천포해전에서 거북선이 임진왜란 최초로 투입되었다.
7. 행주대첩에서 신립 장군이 대승을 거두었다.
8. 정유재란 때 한산도대첩과 노량대첩이 일어났다.
9. 일본이 에도막부를 연 후, 조선은 포로의 송환 교섭을 위해 사명당을 일본에 파견하고 기유약조를 체결했다.
10. 광해군은 양전사업을 실시하여 백성들을 구제하고자 했다.
정답 : OOXXO OXXOO
해설 :
3. 세종 때 맺어졌다.
4. 명종이 아니라 중종.
7. 신립이 아니라 권율.
8. 한산도대첩은 임진왜란.
기출문제 봅시다.
김종서, 두만강 일대 야인, 6진이라는 단서를 통해 ㄱ은 여진족임을 알 수 있지.
ㄱ : 대마도는 일본
ㄴ : 무역소 설치하여 회유. 여진족 ㅇㅋ. 정답!
ㄷ : 왜관이라고 대놓고 말해주네.
ㄹ : 북평관. 여진족 ㅇㅋ. 정답!
정답 : 4번.
왜관에서 이루어졌다고 대놓고 알려주네.
일본이지.
1번. 광군은 거란족.
2번. 만권당은 원나라.
3번. 하정사, 성절사, 천추사는 명나라 혹은 청나라.
4번. 기유약조는 일본. 정답.
5번. 북평관은 여진족.
정답 4번.
왼쪽은 선조가 피신하며 분조를 했을 당시.
오른쪽은 조명연합군의 평양성 탈환.
임진왜란 전개과정을 잘 알고 있어야겠지?
부산성 전투 -> 분조 -> 한산도 대첩 -> 평양성 탈환 -> 정유재란 -> 강홍립 부대 파견(아직 안배움) -> 정봉수와 이립의 의병 활약(아직 안배움)
정답 1번.
조명연합군이 평양성을 탈환한 전쟁은 임진왜란.
1번. 병자호란 때야.
2번. 정묘호란 때야.
3번. 고려 말 왜구 침임 때.
4번. 진주대첩은 임진왜란 정답.
5번. 쓰시마 정벌은 세종 때.
정답은 4번.
고구려비와 탄금대는 어디야?
충주지?
1번. 직지심체요절 청주 흥덕사.
2번. 오페르트 도굴 사건은 예산.
3번. 탄금대 전투에 대한 설명이지. 정답.
4번. 만동묘는 괴산.
5번. 만적의 난은 개경.
정답 3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