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건국과 발전
I. 고려의 큰 흐름
1. 고려사
고려는 무신정변을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뉘어.
그것을 다시 4개로 쪼개면 전기는 초기와 중기로 나뉘어지고, 후기는 원간섭기와 말기로 나뉘어.
2. 고려의 자주성
고려는 묘호를 진흥왕, 근초고왕, 장수왕, XX왕으로 부르지 않고, 중국처럼 태조, 성종, 광종 이렇게 칭했어.
그리고 시호는 신성대왕 이런 식으로 했고,전하가 아니라 폐하라고 불렀어.
이도 역시 고려가 중국과 대등하다는 자주성을 보여줘.
또한 왕의 옷을 보면 황색이었지.
황제를 뜻하는 황색으로 된 황룡포를 입었단다.
이 역시 중국과 대등하게 나갔다는 거지.
3. 고려를 이끈 세력들
(1) 중앙
고려 때 잘나갔던 집단을 살펴보자.
통일신라 때 호족의 세력이 커져서 반란을 주도했다고 했잖아. 그리고 이들 옆에 6두품이 붙었고.
이들 중 고려가 건국된 후 중앙으로 진출한 사람도 있고, 지방으로 가서 향리가 되는 사람도 있었어.(초기, 10C~11C)
중앙에 진출하여 여러 대를 거쳐 중앙의 고위 관직을 차지한 귀족들을 성종 때 돼서 문벌귀족이라고 불렀는데(중기, 11C~12C),
문벌귀족은 고려 중기에 잘 나가다가 무신정변으로 인해 다 숙청당하고, 결국 무신들이 중앙을 지배하지.(12C~13C)
무신집권 때 '서방'이라는 기관을 통해서 지방의 향리들이 중앙으로 들어오기도 했어.
문벌귀족, 즉 문신들이 하던 일을 무장들이 하려니까 어려웠던 거지...그렇다고 숙청했던 문벌귀족 다시 불러들일 수도 없고...
다시 말해서 무신집권기의 주 세력은 '무신 + 향리출신 문신'.
그러나 무신정권도 오래가지 못해.
징키스칸의 지휘로 막강해진 몽골족이 중국을 지배하여 원나라를 세우고, 우리 고려에 쳐들어 와서 엄청난 내정 간섭을 하면서 무신들도 추락...(원간섭기)
이런 원나라에 굽신대며 세력을 키운 자들이 있으니 이들을 권문세족이라고 하지.(13C~14C)
이 권문세족을 때려잡고 고려까지 멸망시킨 세력이 바로 신진사대부와 신흥무인세력이야.(말기, 14C)
(2) 지방
지방에서는 향리가 지배하며 살다가 원간섭기에 성리학을 수용해.
무신집권기 때 중앙으로 진출한 사람들도 있었으나, 지방에서 유학을 공부하며 사는 향리들도 많았거든.
이들은 원간섭기에 성리학을 들여와 자신들의 이론으로 삼아 신진사대부가 돼.
그들은 소학과 주자가례를 중시하고 불교의 폐단을 비판했어.
신진사대부(ex 이색, 정몽주, 정도전 등)는 과거를 통해 중앙에 진출하여 신흥무인세력(ex 최영, 이성계 등)과 함께 중앙의 권문세족들의 횡포에 맞서는 세력이 되고, 결국 그들을 때려잡아.
그 후 신진사대부는 고려 내에서 개혁을 하자는 온건파와 고려를 때려 부수자는 혁명파로 나뉘어.
마지막에는 혁명파가 온건파 수장 정몽주를 때려 죽이고 승리를 하여 조선을 건국하지.
여기까지가 고려의 실세들의 큰 스토리야.
● 고조선 → 한나라에 의해 멸망 → 한사군설치 → 세븐킹덤형성 → 고구려·백제·신라·가야로 나뉨 → 신라가 통일 → 발해의 건국(남북국 시대) → 거란족에 의해 발해가 멸망 → 통일신라의 분열 → 후고구려,후백제,신라(후삼국시대) → 고려가 통일
● 무신정변을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뉨. 전기는 초기와 중기로, 후기는 원간섭기와 말기로.
● 중기에는 문벌귀족의 세력이 강했고, 이후 무신정변으로 인해 문벌귀족이 모두 숙청된 후 무신들이 집권함
● 원나라에 의해 내정간섭을 당하며 무신정권 약화, 권문세족의 세력 강화
● 지방은 향리가 지배하며 무신집권 때 중앙으로 진출한 자(서방) or 원간섭기에 지방에서 성리학을 수용하여 신진사대부(소학과 주자가례 중시. 불교 폐단 비판)가 됨
● 신진사대부들과 신흥무인세력이 함께 권문세족들의 횡포에 맞서는 세력이 됨
● 신진사대부는 온건파와 혁명파로 나뉜 후 혁명파가 승리하여 조선 건국
II.고려의 건국
자~ 이제 차근차근 봅시다.
고려가 건국되는 과정에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은 3명!
견훤! 궁예! 왕건!
통일신라의 왕과 귀족들이 사치와 향락에 빠져 백성을 돌보지 않고 수탈만 겁나 해.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지방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자 지방 호족들이 들고 일어서지.
900년에 견훤이 완산주(지금의 전주)에서 후백제를!<★★>
901년에 궁예가 송악(지금의 개성)에서 후고구려를!<★>
이렇게 다시 또 한반도가 고구려·백제·신라로 3등분이 됨.
궁예는 원래 양길의 휘하에 있던 장수였는데, 그로부터 독립하여 송악에 후고구려를 세웠어.<★★★★>
그리고 송악에서 철원으로 도읍을 옮겨 904년에 국호를 마진, 연호를 무태라고 했다가 911년에 국호를 태봉, 연호를 수덕만세라 칭해.<★★★★★★★★>
문제 보기에 마진·태봉 나오면 궁예 또는 왕건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돼.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 태조 왕건은 궁예의 신하였어.
후고구려의 매우 유능한 장수였지.
근데 궁예가 처음에는 미륵신앙을 내세우며 나라를 현명하게 다스리는 군주였는데, 전제정치에 집착하면서 점점 광기에 빠져들어.
백성들에게는 어마무시한 세금을 거둬들이면서 민심을 잃기 시작했고,
게다가 자신이 사람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관심법을 할 수 있다면서 멀쩡한 신하들에게 반역의 마음을 품고 있다고 누명을 씌워서 죽임ㅡ.ㅡ
심지어 자신의 부인과 아들까지 잔인하게 살해하지.
또한 별것도 아닌 일로 신하들을 처벌하였으며, 백성들을 공포 속에 몰아 넣는단다.
윗 사람이 너무 강하면 말이야... 언젠가는 아랫 사람들이 지치는 법이야.
목숨이 위태롭다 생각한 궁예의 부하들이 결국 왕건을 앞세워 반란을 일으켜.
이로써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당시 수도인 철원에서 국호를 고려라 칭해(918).<★>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송악으로 수도를 옮겨서 통일에 박차를 가하지(919).
후백제는 군사력이 막강했을 뿐만 아니라 후당과 오월에 사신을 파견<★★★★★★★>하는 등으로 외교술에서도 뛰어난 수완을 보였고, 신라의 금성을 습격하여 경애왕을 죽이고(927)<★>, 공산전투(927)에서 왕건이 이끄는 고려군을 줘패버리는 등<★★★> 고려를 크게 위협했어.
그러나 최후의 승자는 누구?!
고려!!
공산전투에서 죽을 뻔한 태조는 다시 상황을 수습했고, 고창전투(930)에서 후백제군을 상대로 크게 승리해.<★>
무려 후백제의 8천여 명의 군사를 몰살시켰단다ㄷㄷ
이때부터 후삼국의 판도가 고려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해.
또한 후백제가 급격히 몰락하기 시작하는 사건이 터지지.
김제에서 견훤이 첫째 아들 신검에게 배신을 당해(견훤이 왕위를 넷째 금강에게 물려주려 하자 신검이 반란을 일으키고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시킴) 고려로 귀순을 하는 사건이 일어난 거야!(935)<★★★★★>
후계자 책봉 문제가 국가 흥망성쇠에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지.
935년에 신라 경순왕이 고려의 기세를 당해내지 못하여 경주에서 고려에 항복<★>을 했고(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됨)<★★>, 그 다음해인 936년에 왕건은 직접 군사를 몰고 가 일리천 전투<★★★★★★>에서 후백제를 때려 부순 후에 완산주에서 항복을 받아내.
이렇게 하여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단다.
III. 고려의 발전
1.태조 왕건
(1) 감세정책
왕건이다!! 고려 출발~
고려를 건국하고 연호를 천수<★>라 정해.
나라를 딱!!!세웠어. 그럼 뭐부터 하느냐...
전쟁으로 지친 백성들을 달래야지.
나라는 백성이 기반이니 그들이 살만해져야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인재도 양성되지 않겠어?
우선 그들의 삶을 안정시키기 위해 감세정책을 실시해. 감세정책! 세금 줄여준다고ㅋ
취민유도정책이야.
전쟁으로 인해 세금이 엄청 올랐었는데 다시 1/10로 정상화 시켜.
왜 전쟁을 하면 세금이 오르는지 알아? 남학생들 대부분은 군대를 다녀왔지?
다녀와봐서 알겠지만 군대는 무언가를 생산해 내는 게 아니라 소비를 하는 집단이야.
농사지을 남자들이 전쟁 나가 싸우고 있으니, 생산력이 저하되어 국가의 경제가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되지.
게다가 전쟁하려면 군량미와 무기를 사들일 돈이 무지막지하게 필요하잖아.
그러다보니 전쟁을 나가지 않은 자들에게 어마어마한 세금을 거둘 수밖에 없는 거야.
고구려도 이래서 망한 거잖아. 끝없는 중국과의 전쟁...
이렇게 지친 백성들에게는 종전(전쟁의 끝)은 환영받을 일이지.
(2) 구휼제도
감세정책 뿐만 아니라 흑창을 통해 빈민을 구제했어.<★★★>
흑창은 백성들에게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추수 때 갚게 하는 진대기관이야.
고구려의 진대법 생각하면 돼. 연관 지어 기억해!
(3) 호족들과의 관계
고려 초기는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이 힘이 강했을 것 같지만, 사실은 호족 연합 정권이었기 때문에 왕의 힘이 약한 시기였어.
하지만 왕건은 그 상황에서 호족들을 잘 달래고 설득하면서 훌륭한 기반을 만들었지.
호족들에게는 채찍과 당근을 조화롭게 줬어.
당근: 정략결혼을 해서 호족들과 친척이 됐어. 얼마나 결혼을 많이 했냐면 공식적인 부인의 숫자만 29명이야ㄷㄷ
딸이 없는 호족들은 어떻게 포섭했을까? 그들에게는 보통 왕씨 성을 하사했어. 사성이라고 하지. 결국 모두 같은 왕씨를 가진 가족이 되는 거야.
게다가 토성분정! 호족들이 거주하는 곳을 기준으로 성씨와 본관을 지정해줘.
밀양 박씨, 경산 이씨 등 이런 식으로...(이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본관이라는 것이 정착하기 시작함)
그리고 고려를 세우는데 기여한 공에 따라 토지를 나누어줬단다. 이를 역분전이라고 해.
(토지를 나누어준 것이 소유권을 준 것이 아니라 수조권을 준 것이라는 사실을 절대 까먹으면 안돼. 왕이 토지를 준다는 것은 언제나 소유권이 아니라 수조권이다! 수조권!)
채찍 : 사심관제도라는 것이 있는데, 중앙 관리에게 자신의 출신 지역의 호족들과 함께 연대책임을 묻는 거야.<★>
예를 들어 너가 인천의 호족 출신인데 중앙 관리가 됐어. 그럼 네가 인천지역의 사심관이 되는 거야.
만약 인천에서 반란이 일어나거나 세금을 안 내는 등의 나쁜 일이 생기면 그 지역의 주동자 뿐 만이 아니라 너도 역시 죄다 엮여서 책임을 지는 거지. 책임이 강화되니 큰 부담이 되겠지. 그러니 사심관이 억지로라도 호족들을 감시하고 통제를 하게 돼.
참고로 왕건은 신라 경순왕 김부가 투항하자 그를 경주 사심관으로 임명하였단다.<★★>
또 기인제도라고 있어. 너의 아들을 볼모로 수도에 보내서 살게 해야 돼.
(문종 때 기인선상제로 바뀌어서 인질이 아니라 잡무를 담당하는 관리가 됨)
네가 호족인데 만약 반란 일으키잖아? 그럼 네 아들은 죽는 거야. 눈치가 많이 보이겠지ㅋ
그리고 정계, 계백료서라는 책을 저술해서 호족들에게 읽게 했단다.<★★★★★★>
왕에 대한 충성심을 심어주는 책이야.
(4) 북진정책
마지막으로 왕건이는 북진정책을 실시했어.
고려가 고구려의 후예임을 밝히고, 북진정책을 실현하는데 핵심도시인 서경(지금의 평양)을 중시했단다.<★>
왕이 늘 가있었다는 얘기야.
또한 발해 유민들을 포용하여 미리 북쪽 지역의 민심을 얻었지.
그리고 결국 영토를 확장하는데 성공을 해. 청천강~영흥만을 경계로! 아래 지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런 영토의 변화과정은 시험에 잘 나오니 반드시 알아둬야 한다.
(5) 기타
왕건은 첫 왕답게 훈요 10조<★>를 지어서 후대의 왕들에게 권고를 했고,
연등회와 팔관회를 성대하게 열어서 불교를 부흥시켰어.
2. 광종
(1) 광종의 등장
왕건이 정략결혼을 활발히 하는 바람에.... 아들이 겁나 많이 생겼어.
그래서 왕건이 죽자, 왕자들이 서로 왕이 되겠다고 자신의 외가(외할아버지, 엄마, 외삼촌 등)를 끼고 쟁탈전을 벌인 거야.
혜종(2대)부터 광종(4대)까지 다 왕건 아들일 정도로 왕위다툼이 치열했단다.
이 짧은 시간 동안에 왕이 이렇게 많이 바뀌도록 치고 박고 싸우니 왕권이 어떻게 되겠어?
호족들의 허수아비 수준으로 떨어지는 거지.
왕건 아들 중 아무나 왕이 되어도 상관없는 거니 걍 물건 갈아치우듯이 쉽게 보일 수밖에...
어느 정도였냐면 태조 왕건의 다음 왕인 혜종이 즉위하자 신하였던 왕규가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반란을 일으켜서 자신의 외손자인 광주원군을 왕으로 세우려고 한 일까지 있었어.(왕규의 난. 945. 왕식렴에게 진압당 함)
신하가 왕을 지 마음대로 세우고, 조종하고, 쥐락펴락하는 거야;
이런 상황에서...!!! 949년 4대 왕 광종이 즉위해.
(2) 노비안검법
광종은 정말 똑똑한 사람이었어.
굴욕적이지만 현재 상황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게지.
호족들한테 함부로 개기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광종은 허수아비인척을 해.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는 거야.
호족 : 왕님아~ 우리 이것 좀 해줘. 그리고 저것도 해주고! 빨리 빨리! 느려 터져 가지고 아오 진짜.
광종 : 그래 그래^^ 미안 느려 터져서; 빨리 해줄게 ㅠㅠ (이 썩을 놈의 호족들...좀만 기다려라... 다 죽여주마...)
이러다 보니 호족들의 백성들에 대한 횡포가 심각해져 평민들은 죄다 파산하여 노비가 돼.
세금을 내는 평민들의 숫자가 줄어드니 국가 재정이 타격을 받는 거야.
그래서 광종이 호족들에게 조심히 말 해.
광종 : 호족들아... 국고가 텅 비게 생겼다. 니들이 원하는 거 들어주려면 돈이 필요한데...
호족 : 그래서 뭐 어쩌자는 겁니까 왕님?
광종 : 니들 노비들 많지? 걔네들 좀 살짝 풀어주자... 세금 다시 걷히기 시작하면 니네 노비로 다시 해~ 응? 부탁할게 ㅠㅠ
호족 : 흠... 그럽시다. 어차피 우리를 위한 세금이 될 테니 으흐흐~
광종 : 땡큐~ (훼이크다 병신들아!)
이로 인해 노비안검법이 시행(956)되어 그동안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들을 평민으로 승격시키는 제도가 시행되지.<★★★★★>
결국 호족 수하에 있던 노비들이 대거 해방이 돼.
(성종 때 노비환천법으로 옛주인 경멸한 자는 다시 노비가 됨)
(3) 과거제 실시 및 공복제정
호족들의 수족을 잘라버린 광종은!
자신의 측근 쌍기라는 신하의 건의를 받아들여서 과거제를 시행해.(958)<★★★★★★★★>
과거 알지? 국가의 관리를 채용하는 시험.
지금의 행정고시 및 공무원시험 등ㅋ
원래 호족의 자식이면 노력하지 않아도 조정의 요직에 나갈 수 있었거든?
근데 과거제 때문에 공부해서 다른 놈들과 경쟁을 하게 생겼잖아?
그럼 호족의 세력이 휘청대겠지.
호족 : 야이 왕새끼야! 보자보자 하니까 끝이 없네. 너 왕 하면 안되겠다.
광종 : 뭐라 했냐? 한판 뜰래?
호족 : 그래 뜨자 짜식아! 어이~ 석돌아! 군사들 모아라!
석돌 : 헐. 주인님. 모일 군사가 없는뎁쇼? 노비안검법 때문에 다 평민되어서 안모여요...;
호족 : ..............?!
광종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 뒤짐.
호족 : X됐다............................
이렇게 해서 광종은 역모에 조금이라도 가담한 사실이 있는 호족들을 다 죽여 버려서 피의 복수를 하지.
결국 호족은 광종의 뛰어난 허수아비 연기에 속아서 결국 몰락해.
호족을 숙청한 광종은 자신이 구상했던 대로 조정 대신들의 옷도 관직에 따라 다르게 입히는 등(자,단,비,녹) 모두 정비했단다.
이게 공복제정이야.
옷 색깔을 구분하여 상하관계를 뚜렷이 했지.
(4) 칭제건원
자신을 황제라고 칭하고 연호를 쓰는 거야.
연호는 처음에 광덕, 시간이 지나 준풍으로 고쳤어.<★★★>
언제나 연호가 나오면 중국에 빌빌대지 않는 독자적이고 강력한 국가가 됐다고 생각하면 돼.
이렇게 똑똑한 광종 덕에 고려의 왕권은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단다.
3. 경종
고려의 상승세 중에 5대 왕 경종이 시정전시과를 시행해.<★★★>
이게 뭐냐면 토지 수조권을 나눠주는 제도를 고친거야.
자세한 내용은 토지제도 파트에서 설명할게.
참고로 토지제도를 뜯어 고치는 것은 엄청난 파워가 뒷받침이 되어야 해.
보수 세력을 누르고 개혁을 한다는 것이니...
광종이 왕권을 풀 게이지로 채워놓은 덕분에 경종이 신하들을 누르고 전시과를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단다.
4. 성종
성종은 2성 6부 체제(나중에 설명)를 마련해.
또한 농사를 장려하고 의창과 상평창(나중에 설명)을 설치했지.
그리고 유학을 가르치는 학교인 국자감과 향교를 설치 및 정비하고, 과거제를 정비했어.
게다가 성종은 지방 12목에 경학·의학박사를 파견<★★>하는 등 유교정치이념을 도입한단다.
이런 성종 옆에서 정책들을 제안하고,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자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최승로야.
최승로....경주 최씨! 신라 때 6두품 출신 집안이었는데, 성종 때 실권을 휘어잡아.
최승로는 5조정적평과 시무28조를 내었는데 성종이 이를 받아드리고 잘 활용해.<★★★★★>
5조정적평은 성종 전의 5대 왕들의 잘잘못을 평가한 글이야.
그리고 시무28조는 고려가 당면한 과제, 즉 지금 왕이 해야 할 일을 적은 글이지.
대표적인 내용으로는 '12목에 외관을 두소서~' 라며 지방관을 파견하도록 권하고(+향리제도 마련)<★★★★★★★>,
"불교는 수신, 유교는 치국!"하면서 나라를 통치하는 데는 유교로 갑시다~라고 권했어.
성종이 즉위하기 전에는 지방 행정은 호족이 알아서 하는 자치적인 성격이 강했는데, 12목을 설치하고 목사라는 지방관을 최초로 파견하여 지방에 직접 왕의 힘이 미치게 돼.
최승로는 유학자로서 성종의 유교정치 이념에 맞게 돈 낭비가 심한 불교행사인 연등회를 축소하고 팔관회를 없애버려.(현종 때 다시 부활)
유학자가 나라의 실세이니, 고려에서 불교의 영향력이 축소되어 버린 거야.
하지만 여기서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은 불교와 유교는 대립관계가 아니야.
고려는 보완관계, 조선은 대립관계!
이렇게 유학자들이 왕과 으쌰으쌰 해서 호족사회는 무너지고, 문벌귀족 사회의 토대가 마련돼.
● 후백제(견훤. 완산주. 900). 후고구려(궁예. 송악. 901). 궁예는 철원으로 도읍 옮김(904-마진,무태. 911-태봉,수덕만세). 왕건이 궁예를 제압하고 국호를 고려라 정한 후 송악으로 다시 도읍 옮김. 신라항복(경순왕. 935). 후백제 항복(936)
● 왕건 : 후삼국을 통일하여 고려건국. 천수. 왕권이 아직 취약. 취민유도정책(감세정책. 1/10). 흑창. 호족세력에 당근(정략결혼. 사성-왕씨성 하사. 토성분정. 역분전지급)과 채찍(사심관제도(충숙왕 때 폐지), 기인제도, 정계·계백료서). 북진정책(서경중시. 영토확장(청천강~영흥만)). 훈요10조. 불교부흥(연등회, 팔관회).
● 왕건이후 왕위쟁탈전 심화. 왕규의 난.
● 광종 : 왕권강화정책. 호족세력약화(노비안검법, 과거제). 공복제정. 칭제건원(황제칭호와 독자적 연호사용,광덕·준풍).
● 경종 : 시정전시과(봉급개념)
● 성종 : 2성6부체제. 농업 장려. 의창. 상평창. 국자감. 향교. 과거제 정비. 유교정치이념 도입. 경학·의학박사 파견. 최승로(5조정적평. 시무28조. 불교는 수신 유교는 치국. 12목에 목사파견. 연등회 축소. 팔관회 폐지(현종 때 다시 부활)) 불교와 유교 보완관계.
- O·X 퀴즈 -
1. 궁예는 철원으로 도읍을 옮겨 904년에 국호를 마진, 연호를 무태라 했다.
2. 태조는 고려를 건국하고 연호를 천수라 정했다.
3. 태조는 사심관제도와 기인제도를 통하여 호족을 견제했다.
4. 태조는 북진정책을 실시하여 영토를 청천강~영흥만을 경계선으로 삼았다.
5. 광종은 흑창을 설치해 빈민을 구제하였다.
6. 광종은 과거제를 실시하였다.
7. 성종은 공복을 제정하고, 2성 6부 체제를 마련했다.
8. 성종은 국자감과 향교를 설치하였다.
9. 최승로는 5조정적평과 시무28조를 성종에게 건의하였다.
10. 최승로는 연등회를 축소하고 팔관회를 폐지토록 했다.
정답 : OOOOX OXOOO
해설 :
5. 광종이 아니라 태조.
7. 공복제정은 광종.
기출문제 ㄱㄱ~
12목에 경학박사와 의학박사를 보낸다네.
성종이지.
1번 : 나중에 배우게 될 예종에 관한 설명.
2번 : 노비안검법은 광종!
3번 : 이 역시 나중에 배우게 될 전민변정도감은 공민왕!
4번 : 최승로의 시무 28조는 성종! 정답!
5번 : 정계와 계백료서는 태조!
정답 : 4번
완산주는 후백제 수도지.
신검이 견훤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장면이야.
1번. 공산 전투는 그 전.
2번. 궁예 축출은 그 전.
3번. 경애왕 사망은 그 전.
4번. 일리천 전투는 그 후지? 정답.
5번. 고창 전투는 그 전.
정답 4번.
양길에게 의탁한 내용으로 보아 선종은 궁예야.
1번. 김흠돌 숙청은 신문왕.
2번. 고창 전투에서 패한 것은 견훤.
3번. 경애왕 죽게 한 것은 견훤.
4번. 이것도 견훤.
5번. 국호 마진, 철원 천도는 궁예! 정답.
정답은 5번.
순서를 잘 알고 있어야 돼.
특히 고려 건국과정, 동학농민운동, 1920년대 국외 독립군 활동은 순서묻기 단골 문제야.
공산전투 -> 고창전투 -> 신라 항복 -> 일리천전투 순이지.
정답은 3번.
12목에 박사들 파견은 성종이지.
1번. 향리제 정비는 성종 정답!
2번. 해동통보는 숙종.
3번. 과거제 실시는 광종.
4번. 정계와 계백료서는 태조.
5번. 성균관으로 개칭은 충선왕.
정답은 1번.
견훤이 세운 것은 후백제지.
1번. 광평성은 고려.
2번. 견훤이 공산전투에서 대승 거뒀지. 정답!
3번. 인안은 발해.
4번. 청해진은 통일신라.
5번. 국호 마진, 철원 천도는 고려.
정답은 2번.
훈요 10조는 태조, 시무 28조는 성종이야.
왕들 순서 잘 기억해.
그 사이에 들어간 왕의 업적을 골라보자.
1번. 정방은 무신정권 때라 성종 후.
2번. 별무반 편성도 성종 후.
3번. 노비안검법 광종. 정답!
4번. 독서삼품과는 태조 전.
5번.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는 성종 후.
정답 3번.
(가)는 공산전투, (나)는 일리천 전투.
1번. 시무 28조는 성종 때.
2번. 경순왕 김부가 경주 사심관이 된 때는 그 사이 맞지. 정답.
3번. 태조 왕건이 난이 일으킨 때니 공산전투 전.
4번. 국호 태봉은 공산전투 전.
5번. 과거제는 광종 때.
정답 2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