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항쟁 및 삼국 통일

지금까지 삼국의 각 나라별로 발전과정을 살펴봤지?
오늘은 7세기!
이제 최후의 승자가 결정나는 과정에 대해 설명을 할거야.

I. 백제의 멸망

1. 6~7세기의 외교관계

진흥왕이 성왕의 뒤통수를 후리고 한강유역을 장악하면서 삼국의 대세는 신라에 기울게 돼.
그럼 삼국의 밸런스를 위해 고구려와 백제가 동맹을 맺게 되겠지?
그림처럼 십자외교<★​​>가 형성된단다.
'돌궐 + 고구려 + 백제 + 왜' VS '신라 + 당'

​2. 백제의 선빵과 신라의 위기

의자왕이 우리가 알고 있는 오해와 달리 겁나 멋있는 왕이거든.
의자에 앉아서 삼천궁녀끼고 술 마시며 놀고 먹기만 해서 의자왕이 아니야;
의롭고 자비롭다는 뜻의 의자왕이지.

삼천궁녀도 문인들이 표현한 문학적인 표현이며, 이를 일제시대 때 일본 놈들이 조롱하면서 가요를 만들어 오해가 생긴 거고 진실이 아니란다ㅋ
어찌됐든 백제가 관산성전투에서 패한 후 슬슬 국력을 회복시키고 있다가, 의자왕때 정치가 정말 잘되어 백제가 다시 한번 힘을 좀 쓰게 됐어.
의자왕이 일도 잘했고, 또한 백성들이 의자왕을 지극히 사랑하고 따랐다고 하니, 나라가 하나가 되어 국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지.
파워풀한 국력을 바탕으로 백제는 신라로 쳐들어가.
아니! 언제 백제가 이렇게 강해졌는지 신라가 그냥 쳐발리기 시작하는 거야.
대야성​(김춘추 사위 사망)을 비롯하여 성이 무려 40여개나 함락이 돼.<★​​★​​★​​★​​★​​★​​★​​★​​>
​아주 탈탈 털리는 수준이지...;
경주까지 먹히기 직전인 상황!

​3. 나당연합의 결성

그래서 내물마립간이 왜놈들 쳐들어왔을 때 고구려 광개토대왕에게 지원을 요청했던 것처럼 선덕여왕은 고구려에 도움을 요청하고자 김춘추를 사신으로 보내(642).<★​​>
이때 고구려는 영류왕을 죽이고 보장왕을 앉힌 대막리지​(고구려 말 행정 및 군사권을 장악한 최고 관직) 연개소문이 집권하고 있었어.

cf)

연개소문은 642년에 정변을 일으켜 영류왕과 반대세력을 죽이고, 보장왕을 옹립하여 스스로 대막리지가 되어 고구려의 최고 권력가가 됐음.<★​​★​​★​​>

신라의 대표 김춘추와 고구려의 세력가 연개소문이 딱 마주 앉아서...

김춘추 : 연개소문님... 굽신굽신.. .우리 좀 도와주세요.
역사속에서만 뵜던 광개토대왕의 깡패수준의 고구려 전투력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네요.

연개소문 : ㅋㅋㅋ 헛소리 집어치우고, 원래 우리 고구려 영토였던 죽령 서북땅​(고구려에서 신라로 이어지는 요충지) 내놔라. 그럼 내 친히 남쪽으로 내려가 백제 새끼들 개미 밟듯 몰살해주마ㅋㅋ​(명백한 거절이나 마찬가지. 이때 즈음하여 사실 고구려는 백제와 동맹을 맺었다는 설도 있음)

김춘추 : 凸


고구려는 이처럼 신라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고, 신라는 이를 거절하며 당나라로 가서 요청을 해.

당 : 왠일이슈?

신라(김춘추<★​​★​​>​) : 님 저번에 안시성전투에서 고구려한테 발렸다면서?ㅋ 복수해야지~

내가 고구려 새끼들 아래서 공격해 줄 테니 위로 쳐들어와서 고구려 뚜드려 팬 다음 그 영토 가져라.

당 : 헐. 공짜로?

신라 : 미쳤냐? 그 전에 니 수군들 죄다 한반도로 보내서 백제 좀 뚜드려 패줘야 겠음. 그리고 백제 땅은 우리가 먹는다.

당 : (흠... 신라의 도움 없이는 저 무시무시한 고구려 놈들을 못 이기겠지?; 쩝...어쩔 수 없다.) 콜!


이에 따라 나당연합이 결성(648,진덕여왕)<★​​★​​★​​★​​★​​>되고, 당나라는 약속대로 백제의 뒤통수를 공격해.

​4. 황산벌 전투와 백제의 멸망

갑자기 당나라 놈들이 서해안을 건너서 금강 하구를 통해 마구 쳐들어오니까 백제는 경주 함락 직전에 할 수 없이 군대를 돌려 방어에 치중하지.
이렇게 백제가 당나라 군대의 기습 때문에 휘청거리고 있을 때, 신라는 백제에게 치명타 펀치를 먹여.
그게 바로 황산벌 전투​(660)<★​​★​​>야.
'김유신 VS 계백'<★​​>​의 세기의 대결이었지.

백제의 계백 장군이 결사대를 이끌고 꽤나 선전<★​​>했지만, 대세는 이미 신라에게 기울어져 있었어.
결국 백제는 불리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관창 사건으로 사기가 오를대로 오른 신라군에게 황산벌 전투에서 패배를 했단다.
큰 싸움에서 패배한 백제는 결국 몰락하고 사비성이 함락되어버림.
그리고 웅진성으로 피신했던 의자왕이 얼마 지나지 않아 660년 7월 18일에 항복을 하고 당나라로 끌려가.
백제 멸망....ㅡㅜ

백제가 망한 후, 다시 나라를 일으키자며 4년에 걸쳐 백제부흥운동​(660~663)<★​​★​​>이 전개돼.
결국에는 나당연합군에게 진압이 됐지만, 그들을 매우 골치아프게 했단다.
아래 지도에 적힌 위치와 주도자 잘 기억해놔.
도침·복신(사비성 공격), 흑치상지는 왕자 부여풍을 왕으로 내세우며 들고 일어났지.<★​​★​​★​​★​​★​​★​​>​
임존성에서는 지수신이 끝까지 저항<★​​>​
했을 정도로 매우 치열한 싸움이 전개됐고, 백강전투​는 일본이 지원<★​​★​​★​​★​​>해줬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둬!

<★​​>​

● 신라의 진흥왕 전성기 → 십자외교형성(돌궐+고구려+백제+왜 VS 신라+당) → <백제>국력회복 후 의자왕이 신라공격(대야성 함락) → <신라>선덕여왕 고구려에 도움요청(신라의 김춘추와 고구려의 연개소문 사이의 협상불발) → <신라>당나라에 도움요청(나당연합 결성) → 황산벌 전투 - 김유신VS계백(나당연합VS백제)→ <백제>멸망, 사비성 함락 → 백제부흥운동(임존성(충남 한산)-흑치상지,주류성(충남 예산)-복신·도침,왕자 부여풍,백강전투-왜의 지원)

II. 고구려의 멸망

1. 고구려 VS 수나라

중국이 남북조로 분열되어 약화됐을 시기에 장수왕이 남진정책에 성공하여 고구려는 백제에게 한강유역을 빼앗아 큰 전성기를 누렸다가,
장수왕이 죽은 후에 나제 연합군에 밀려 신라에게 세력을 빼앗겼다고 설명했지?
그 후로도 고구려는 한강수복을 위해 엄청 노력을 해. 하지만 그 유명했던 온달장군이 아단성전투​(590)에서 전사를 하는 등 실패로 끝나지.<★​​>
사실 중국만 없었어도 고구려가 통일에만 집중해서 다시 전성기를 잡고 삼국을 통일했을 수도 있었어.
하지만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가만히 두지를 않는 거야.
아래서 설명할 무시무시한 전쟁으로 인해 고구려는 발전을 하기에 큰 한계가 있었단다.

남북조가 멸망하고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 있던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 문제는 597년(영양왕 8년)에 엄청난 대군을 앞세워 고구려에게 항복을 요구해.

수 : 야 고구려. 내 뒤에 군사들 보이냐? 이 떼거지로 다 짓밟아 버리기 전에 우리한테 항복해라.
고구려 : (헐; 겁나 많네 ㅎㄷㄷ 하지만 상남자 고구려의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항복을 하리...)
그 입 닥치시고 내 주먹 한번 받으시게~

깡다구로 똘똘 뭉친 전투민족 고구려는 오히려 수나라에게 요서지방 공격 선빵을 선사하지(598).

한대 얻어 맞은 수나라 문제는 분노게이지 풀로 찬 상태에서 중국 본토에 있는 군사를 끌어 모아서 3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해 와.
그러나 고맙게도 태풍이 불어주어 요하에서 고구려는 이를 방어하는데 성공하고 수나라를 퇴각시키지.
하지만 얼마 안 있어 문제의 둘째 아들 양제가 113만 대군을 이끌고 또 쳐들어온단다.
그 중 정예병 30만 대군이 평양성으로 쳐들어왔는데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이 뛰어난 전략으로 수나라 군대를 몰살시켜ㅋㅋ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우중문 장군에게 오언시를 보내고, 수나라가 퇴각하는 때에 뒷통수를 빡!
이 전투가 그 유명한 영양왕 때의 청천강 살수대첩(612년)이야.<★​​★​​★​​>
이때 수나라로 돌아간 군사가 2천 7백 명 뿐이었데...

암튼 그 후에도 수나라와 고구려는 전쟁을 계속했어...
근데 문제가 생겨...
전쟁을 하려면 돈이 엄청나게 필요하거든.
이에 따라 수나라는 전쟁을 치르면서 막대한 세금을 백성들에게 거두었고 가혹한 노역도 요구했지.

그러니 백성들이 가만히 있겠어? 여기저기에서 반란이 끊이질 않았고 결국에는 수나라는 멸망하게 돼.
그리고 당나라가 중국의 새로운 주인이 되지(618).
고구려 역시 전쟁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워낙 싸움을 많이 해서 이곳저곳이 터지고 멍들고 난리가 아니었단다.
전쟁은 아주 비싼 이벤트라서 속전속결해야지, 길어져 버리면 둘 다 망하는 지름길이야.

2. 고구려 VS 당나라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시달린 고구려는 당나라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천리장성을 쌓아​(영류왕~보장왕. 647).<★​​>​
부여성에서 비사성까지 연개소문이 주도하여 축조하지.
당나라 입장에서는 이런 대당강경책을 좋아할 리가 없겠지?
이에 당나라 태종은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에 몰려온단다.​(보장왕)
수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을 빠르게 수습한 당나라와는 달리 고구려는 신라와 백제에 신경을 쓰느라 아직도 비틀대고 있었어.
그래서 고구려는 당나라에게 거듭하여 패배를 해...ㅡㅜ
당태종이 친히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신나게 뚜드려 패면서 정벌해 나갔단다.
하지만! 당나라 군대가 막힌 곳이 바로 안시성이야.
양만춘 장군이 안시성을 기가 막히게 방어를 해내어 당나라 군대는 결국 퇴각을 하지.(645)​<★​​>​
그 후에도 당나라는 랴오허 강과 압록강 쪽으로 또 침략을 했는데 고구려는 이를 모두 물리쳐.

3. 고구려의 멸망

하지만 수나라에다가 당나라의 군대까지 막아내느라 모든 국력을 다 쏟아 부은 고구려는 앓아 누워버렸고...
결국 고구려는 서기 668년에 나당연합군에 의해 평양성이 함락되고 보장왕은 항복하고 말아.<★​​★​​★​​★​​>

고구려 역시 670~673년에 부흥운동이 있었으니 지도에 적힌 위치랑 주도자들 암기!
고연무, 안승(고구려 왕자), 검모잠!<★​​>

III. 나당전쟁

위에서 말했듯이 당나라는 고구려땅, 신라는 백제땅을 갖기로 얘기가 되어 있었거든?
근데 당나라 이놈들이 한반도 전체를 집어 삼키려고 하는 거야.
맨아래 지도에 나온 것처럼 도호부나 도독부를 설치하면서 야욕을 드러내지.
안동 도호부(평양, 668)<★​​★​​>​는 원래 약조대로 설치된 것이니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웅진 도독부(공주, 660)에는 의자왕과 함께 끌려간 백제 왕자 부여융을 도독으로 임명하였고,(664)
계림 도독부(경주, 663)에는 문무왕을 도독으로 임명<★​​>​하는 등 아주 백제와 신라 땅까지 지배하려고 하는 거야.
당시 당나라에 비해 힘이 없었던 신라는 공주 취리산에서 문무왕과 부여융이 회맹(665)을 하는 굴욕적인 모습까지 보인단다.
이러니까 신라가 빡이치겠어 안치겠어?

신라 : 야 더 이상은 못참겠다.
당 : 못참으면 어쩔껀데?
신라 : 그래 이새꺄!! 너죽고 나죽자!!!

그래서 '신라 VS 당나라' 나당전쟁(670)이 일어나.
당나라 군사가 머무는 웅진도독부와 신라의 대결로 시작해서 671년 석성전투에서 신라가 대승을 거두고, 사비에 소부리주(행정구역)를 설치하면서 슬슬 승기를 잡아.
당나라는 웅진도독부를 요동으로 이동시키고(672), 문무왕을 부정하며 그의 동생인 김인문을 신라왕으로 봉하면서 발악했지만(674),
결국 매소성 전투(675)<★​​★​​★​​★​​★​​★​​★​​>​기벌포 전투(676)​<★​​>에서 신라가 승리를 하면서 당나라를 몰아낸단다.

말이 나당전쟁이지, 사실은 백제와 고구려의 모든 잔여세력이 연합을 해서 당나라 군대를 패버림.
고구려 부흥운동을 신라가 도와줬다고 했잖아?
나당전쟁이 진행될 때 고구려 왕자 안승이 금마저(익산)에서 군사를 일으켜 부흥운동을 했거든.
신라가 원래 진압해야 맞는 얘기지만, 지금 고구려 세력이랑 싸울 때가 아니야.
당나라놈들부터 처리하는게 급하다고!!!
마침 안승이 당나라에 맞서 싸우네?
그래서 신라 문무왕이 안승을 지원해 준 것이야.
여기서 승리한 후에 신라 문무왕은 674년에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추대<★​​★​​★​​★​​>​해 주고, 고구려부흥운동은 화기애애한 결말을...

어찌됐든 위와 같이 당나라를 신라땅에서 축출해버리면서 드디어 676년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게 된단다.
신라의 입장에서는 영토가 늘어나긴 했지만...
한민족 전체로 봤을 때는 만주벌판은 다 잃어버리고, 대동강에서 원산만까지의 경계로 영토가 줄어든 아쉬운 통일로 평가 받아.
(원래 임진강부터 덕원까지였는데, 성덕왕 때 대동강에서 원산만까지로 확정됨)

순서 좀 다시 정리해 줄게.
중요하니까 반드시 알아둬.

● <고구려>장수왕 전성기 → 나제연합군에 패배, 신라에게 세력 빼앗김 → 수나라 VS 고구려 전쟁 반복(요하전투,평양성전투,살수대첩 등) → <고구려>승리, 수나라 멸망 → <고구려>당나라와 화친 → 천리장성 쌓으면서 당나라와 사이 틀어짐 → 당나라 고구려 공격 → <고구려>안시성전투에서 당나라 방어 → <고구려>나당연합군에 멸망 → 고구려부흥운동(한성-검모잠, 오골성-고연무, 금마저-안승) → <당나라>도호부, 도독부설치하며 야욕 → 나당전쟁 → 매소성전투, 기벌포전투 등에서 신라승리(백제, 고구려 세력이 신라를 지원해줌) → 신라 삼국통일




- O·X 퀴즈 -
1. 진덕여왕은 고구려에 도움을 요청하고자 김춘추를 사신으로 보냈다.
2. 진덕여왕 때 나당연합이 결성되었다.
3. 660년 백제가 멸망하고, 4년에 걸쳐 백제부흥운동이 전개됐다.
4. 검모잠은 사비성을 공격하며 백제부흥운동을 전개했다.
5. 영양왕 때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대첩에서 대승을 거뒀다.
6. 천리장성은 영류왕 때 축조되기 시작되어 보장왕 때 완성되었다.
7. 안시성에서 양만춘 장군의 선방으로 당나라 군대가 퇴각하였다.
8. 고연무와 흑치상지는 고구려 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9. 신라가 매소성전투와 기벌포전투에 승리를 하면서 당나라군을 몰아냈다.
10. 나당전쟁은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잔여세력과 함께 힘을 합쳐 당나라에 승리한 전쟁이다.



정답 : XOOXO OOXOO

해설 :
1. 선덕여왕이 보냈다.
4. 도침·복신에 대한 내용.
8. 흑치상지는 백제부흥운동 전개.​



​기출문제!








역사적 사실의 순서를 잘 알고 있어야 돼.
(가)는 김춘추가 나당연합을 결성한 648년, (나)는 평양성이 함락되어 고구려가 멸망한 668년이야.
그 사이에 있었던 설명을 골라보자.

1번 :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승리한 후 당나라가 안동도호부를 요동지역으로 옮겼어.
2번 : 백강전투는 663년으로 고구려 멸망 전에 이루어졌어. 정답!
3번 : 나당전쟁은 고구려 멸망 후지.
4번 : 안승이 보덕국왕으로 임명된 것은 고구려 멸망 후야.
5번 : 천리장성은 나당연합 결성 전에 축조되었지.


정답 : 2번.










온달의 아단성 전투 이후의 사실을 골라보자.

1번. 환도성 함락은 동천왕. 이전 사실이야.
2번. 연개소문이 정권 장악은 아단성 전투 이후지. 정답!
3번. 미천왕은 전.
4번. 태조왕도 전.
5번. 장수왕도 전.

정답 2번.









무열왕이 당나라 군을 맞이했고,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 왕의 도성을 격파하고자 한다네.
이 왕은 의자왕이지.

1번. 사비 천도는 성왕.
2번. 대야성 점령은 의자왕. 정답!
3번. 낙랑군 축출은 오래전 미천왕 때.
4번. 매소성 전투는 이미 백제 멸망 후.
5번. 보덕국왕 임명도 백제 멸망 후.

정답은 2번.








(가)는 고구려로 동맹 맺으러 가기 직전.
(나)는 황산벌 전투.

1번. 안승이 보덕국왕이 된 것은 (나) 이후.
2번. 나당동맹은 (가)와 (나) 사이지. 정답!
3번. 을지문덕 살수대첩은 (가) 이전.
4번. 기벌포 전투는 (나) 이후.
5번. 복신과 도침의 백제부흥운동은 (나) 이후.

정답은 2번.










김춘추가 나당동맹을 결성시키고 귀국한 시기네.
안시성전투와 황산벌전투의 사이의 시기지?

정답은 (나) 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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